(낭독)[우리들의 사는 이야기 53] 딸 반성문 by 전익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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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 / 윤련순, 음악편집 / 변소화

딸 반성문

글 / 전익순

또 여느 아침처럼 엄마아빠의 높아지는 언성에 잠에서 깼다.

“그렇게 하는거 아니라는데…아유~저리가! 내가 평생을 이러구 살아~”

넉두리를 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이어 “에이C ! ”하며 아빠가 방문을 쾅 하고 닫는 소리도 이어진다. 난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쓰고 최대한 귀를 틀어막았다.

2020년 음력설을 앞두고 한국에 있던 엄마와 아빠가 상해로 들어오셨다. 설도 쇨 겸, 외손주도 볼 겸해서 들린 그 “잠깐”이 코로나로 인해서 “거의 2년”이란 시간으로 되고 말았다.

어쩌면 엄마가 원했던 바였을 수도 있다. 사위는 일본에서 일하고 있고, 평소에 딸 혼자서 일 하랴 애 키우랴 바삐 돌아치는 바람에 늘 애를 유치원에서 늦게 데려오는 모습이 짠해서, 통화를 할 때마다 “내가 가서 봐줄가?”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지만 “노! 땡큐!”를 외치는 이 딸내미를 엄마도 어쩔 수 없었다.

중국에 들어오신 처음 며칠은 두분의 기분이 너무 좋으셨다. 외손주 마중가는 유치원로선을 익히느라 거의 2키로 되는 거리를 하루에 몇번씩 다녀오시기도 했고, 서먹해진 외손주랑 친해지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하셨다.

그런데 이놈의 외손주가 협조를 안 한다. 중국말이 서툰 외할머니한테 우리말은 전혀 안 하고 찍찍 중국말로 갈겨대고, 외할머니가 안아주려고 해도 쏙 빠져나가 버린다. 그 덕에 난 서운해 하실 엄마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엄마,서운하지? 애가 좀 컸다고 이러네. 이젠 나보다도 친구들하고 노는걸 더 좋아한다~하핫”난 어색하게 애를 대신해 변명을 했고,

“그래…크면 그렇지 뭐…”하시면서도 엄마의 말투에서는 서운함을 숨길 수 없을만큼 티가 났다.

‘내가 바빠지고, 엄마가 아이를 케어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좋아질거야…’라고 기대했지만 며칠 뒤 바로 코로나가 터져버렸다. 애 유치원도 스톱, 나의 일도 스톱, 3대가 옴짝달싹 못하고 집에 갇혀 지내야 하는 상황이 되여버렸다.

금방 좋아질거라 기대했던 코로나는 사그라질 기미가 없고 흉흉한 소문만 돌았고, 나가 놀 수가 없으니 애는 더욱 나의 껌딱지가 되여버렸다.

외손주를 돌보고 싶었고, 바쁜 딸내미를 위해 주고 싶으셨던 엄마의 기대가 그대로 무너져버렸다. 딸은 한가해져버렸고, 외손주는 한가해진 지엄마한테 딱 붙어 외할머니에게 틈을 주지를 않았으니.

언제부터였던지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엄마와 아빠의 다툼이 잦아졌다. 하루에도 몇십번을 두분이 언성을 높이셨고, 아침에 나를 깨우는 건 알람소리가 아니라 엄마아빠의 다툼소리인 적이 더 많아졌다.

다투시는 이유도 참으로 갖가지였다. 엄마가 뭘 하는데 아빠가 옆에서 서성거렸다고…아빠가 물 마시는 컵을 아무데나 두었다고…아빠가 발을 안 씻었다고…

이게 싸울 일이냐 싶을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 어처구니 없고~사소하고~ 거의 똑같아 보이는 이유로 거의 매일을 다투셨다.

아이러니하게도 난 이런 상황들이 불편했지만 익숙했다.

어린 시절에, 우리 집에 늘 있던 풍경이였기 때문이다. 달라진 것이라면 어렸을 적엔 엄마가 일방적으로 아빠한테 쏘아붙이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젠 아빠도 엄마의 쓴소리에 똑같이 짜증을 내셨다. 40여년을 사시면서 엄마아빠의 다툼이 업그레이드 되신거다.

처음엔 눈치를 보며 어떻게든 딱딱해진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애를 써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자 내 마음속에서 어린시절의 기억이 악몽같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엄마는 집안의 “절대권력자”셨다. 어릴 적의 나는 늘 엄마의 기분을 살피고 있었다. 기억대로라면 아마 나는 세상에 태여나서 자아가 형성될 쯤 부터 벌써 엄마의 눈치를 볼 줄 알았을 것 같다.

농사로 먹고 사는 작은 동네라 겨울이면 한가해져서 아빠는 늘 화토나 패를 치러 다니셨다. 물론 엄마도 많이 다니셨지만 그래도 엄마는 우리 남매의 끼니를 챙겨야 해서 시간되면 돌아오시군 했다. 문제는 아빠다. 놀기 시작하면 푹 빠져서 집에 올 줄 모르는 아빠때문에 두분은 엄청 싸우셨다. 그래서 아빠가 안 온다 싶으면 나는 얼른 엄마의 눈치를 봐가며 아빠를 찾아 온 동네를 찾아다녔다. 그때의 겨울은 왜 그리도 추웠는지…눈은 왜 그리도 많이 왔는지…

엄마는 기분이 나쁜 날에는 밥을 안 드시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난 늘 엄마가 밥을 드시나 안 드시나를 살폈다. 엄마가 밥을 안 드시는 날에는 집안청소를 하고 설겆이를 하며 엄마가 기분이 좋아지길 바랬다. 그렇게 눈치껏 행동해도 엄마의 기분을 맞출 수가 없어서 가끔은 얻어 맞기도 했다.

대여섯 살 쯤 되였을 때 였을까…동갑내기 사촌남동생랑 길에서 놀다가 동생이 날린 재더미가 바람결에 눈에 들어가 나는 왕~왕~ 울어댔다. 내 울음소리에 한걸음에 달려나온 엄마는 연유도 살피지 않으시고 다짜고짜 길가에 널려있던 나무가지를 주어서는 나를 때렸다. 왜 그러셨을가? 우는 내가 시끄러워서? 그런데 그 어린 나이에 맞는 것보다 더 슬펐던 것은 엄마랑 같이 달려나온 이모는 옆에서 동생을 꼭 끌어안고 무슨 일이냐고 묻고 있다는 사실이였다. 그때 나는 “왜 엄마가 내 엄마냐고오~~~! 이모가 내 엄마였으면 좋겠어~~~!”라고 바락바락 악을 썼던 것 같은데 그게 실제였던지 내가 너무 바라고 상상을 해서 기억만 그랬던건지는 모르겠다.

소학교를 마치고부터는 엄마랑 떨어져 외지에서 기숙사생활을 하면서 학교를 다녔고, 학업을 마친 후로는 집을 아예 떠나 있어서 그 뒤로는 엄마랑 부딛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일본에 유학을 간 뒤로는 몇년에 한번씩밖에 못 만났으니 미운 마음보다는 만날 때마다 훌쩍 늙어버린 듯한 엄마아빠의 모습에 애틋한 마음만 커져갔었다. 미처 돌보지 못한 어릴적 마음의 상처들은 내 가슴속에 봉인된 채로 말이다

엄마아빠는 아마 의례 그렇게 자식 키우며 사는가부다~하셨을 수도 있고 나 또한 바삐 살다보니, 어릴 적의 이런 기억들이 다 사라진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코로나로 인해 오랜 시간 붙어지내면서 다시 새록새록 살아난 것이다.

나한테도 변화가 생겼다. 어렸을 땐 무섭고 두려워 부모님들의 다툼을 보고만 있어야 했지만, 이젠 컸다고 말리기 시작했다.

“내 아들만은 나처럼 다투는 소리에 잠을 깨는 경험을 하게 하기 싫어!” “우리 아이는 엄마인 내가 지켜야 해!”라는 이유도 있지만, 어쩌면 “엄마는 왜 그때 어린 나의 상처를 못 보고 싸우기만 했어?”라는 원망과, “어렸을 때 내가 그렇게 눈치를 보며 컸는데 이 나이에 아직도 눈치를 보며 살아야겠어?”라는 억울함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사춘기를 조용히 넘겼던 딸이 40이 넘어서 반항기에 들어선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엄마 눈치를 보게 되는 일이 또 있었다. 엄마가 가끔 친척들이랑 통화를 하면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답답해 죽겠어. 돈도 못 벌지…한국에 있었더라면 일도 하고 돈도 벌텐데…”라고 하시는데 난 그말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을 했다. “엄마는 지금 나보고 애 봐주는 돈을 달라는거야 뭐야? 지금 코로나로 수입이 줄어서 힘든거 알면서…” “내 뜻은 그런게 아니라…” 주눅이 들어서 설명하는 엄마한테 나는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도 내뱉었다.“엄마가 그렇게 한국에 가고 싶으면 가. 나중에 우리 애 봐주느라 못 갔다고 내 원망 말고! 지금껏 엄마 없이도 나 애 잘 키웠어!”

그렇게 나는 나대로 온갖 짜증을 퍼부었고, 엄마는 엄마대로 이상해져갔다. 코로나 상황이 좋아졌을 때도 집밖에 나가는걸 일체 거부했다. 반년 넘게 엄마의 외출이라고는 집 앞에 자그만한 마당이 있는데 그 마당에 채소를 심고 가꾸는 것이 전부였다. 못된 나는 그 것마저도 싫었다.

“엄마, 엄마는 농촌의 텃밭처럼 가꿀 예정이야? 상해에서 마당이 있는 집에 산다는거 그리 흔한 일이 아니야. 잔디를 심어서 애가 거기서 뛰여놀게 하면 얼마나 좋아. 엄만 참…” 엄마는 내 말을 따르지도 않고 굳이 반박도 안 하셨다.

그렇게 근 1년을 때로는 지지고 볶고, 때로는 한 집에서도 말 몇마디도 안 하면서 그렇게 지냈다.

그러다가 내가 사정상 애를 데리고 일본에 가서 두달정도 있게 되였다. 정말이지 엄마아버지의 다툼소리를 안 들어서 속이 시원할 줄 알았다. 제일 가깝지만 불편하고, 익숙하지만 피하고 싶은 그런 복잡하고 모순적인 것들이 눈에 안보여서 너무 신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참 이상했다. 해마다 일본에서 한동안은 지내는데, 처음으로 그토록 간절하게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엄마아빠가 잘 계시는지, 아프지는 않는지, 아파도 병원갈 줄 몰라서 참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가 없다고 맨날 김치에 밥을 드시지는 않는지…걱정이 되였다.

그리고…

그리고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엄마의 잔소리가 그리웠다.

무엇때문일가? 그때의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두달만에 집에 도착한 그 이튿날에도 난 예외없이 엄마아빠의 다툼소리에 잠에서 깼다. 변한건 하나도 없는 듯했지만 왠지 나는 모든 것이 달라보였다. 일흔이 넘어도 저렇게 싸울 힘이 넘치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피씩 웃음이 났고 아직 달게 자는 아들을 끌어 안고 부비부비하면서 깨웠다. 밖에선 엄마아빠가 신나게 말다툼하고 계시고 방안에선 내 품안에서 꼼지락거리던 아들이 내가 퍼붓는 뽀뽀세례에 캐드득거린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조화롭고 평화롭게 느껴지는 순간, 난 소리내여 웃어버렸다. 아이도 웃고, 우리의 웃음소리에 엄마아빠도 말다툼을 멈추시고 우리방에 들어와 어이없이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뜨리셨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다른 류형의 감정의 쓰나미가 확 밀려왔다—“행복하다~”

현재도 여전히 변한건 아무것도 없다. 엄마와 아빠는 여전히 다투시고, 엄마는 여전히 잔소리가 많다.

하지만 또 뭔가 변해있다. 엄마아빠의 다툼에 난 더 이상 짜증이 나지 않고, 제발 20년만 더 저렇게 힘껏 다퉈주길 기도한다.

엄마도 변해있었다. 우리집 마당 외에는 나가기 싫어하던 엄마가 동네는 물론,  8키로 되는 시장까지도 걸어서 갔다 오신다. 시장 갈 일이 없으면 밖에 나가서 산보도 하고 돌아오셔서는 유치원에 갔다 온 아이가 엄마한테 하루동안 있었던 일을 종알종알 외우듯 신나게 많은 걸 외우신다. 어떤 날은 저번에 들판에 뿌려놓은 깨가 싹이 터서 나오고 있었다고 들떠있고, 어떤 날은 저번 날 봐놓은 민들레밭에 민들레가 올라왔는데 아직은 너무 작아서 좀 기다렸다가 캐려고 놔두었더니 누군가 먼저 캐갔더라고 아쉬워했다.

그리고 이제야 엄마의 사랑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 마음속에 얼어있던 엄마에 대한 원망이 녹아져 내리니 그 안에 큰 사랑이 보인다. 어렸을 때 지난 끼니의 밥이 남으면 엄마는 새 밥을 적게 하고, 지난 끼의 식은 밥을 나랑 엄마가 먹고,새 밥은 오빠와 아빠한테만 주셨다. 그걸 지난 반항기일때 얘기했더니 엄마는 그 뒤로 단 한번도 나한테 식은 밥을 안 주고 새 밥을 먼저 떠주셨다. 10대 때나 할 법한 밥투정을 40살이 훌쩍 넘은 못난 딸이 하는데도 한마디 나무람도 없이 말이다.

그러다 요즘 들어 문뜩 떠오른 깨달음…난 나한테만 식은 밥을 주는 엄마에 대한 원망과 그 식은 밥을 먹는 서러움만 있었지, 엄마도 같이 식은 밥을 드시고 계셨다는 사실은 잊고 있었던 것이다. 힘든 생활을 이어가느라 엄마는 늘 삶에 치여 계셨고, 그때 엄마로서의 최선을 다해 당신을 희생하시면서 가족을 보살폈었다. 엄마도 여자셨고, 가족들이 그 희생을 알아주기를 얼마나 내심 기대하셨을가? 그러나 기대는 늘 어긋났고 아마 그래서 엄마는 그렇게 강하게만, 아니, 강한척 살아오셨으리라…

이제는 밥상을 차릴 때 내가 밥을 뜬다. 엄마밥을 제일 먼저 따뜻한 새 밥으로.

아빠와 남편은 “우린 찬밥이 더 좋아~”하며 서로 빼앗기를 한다.

코로나가 참으로 많은걸 앗아갔다. 하지만 덕분에 나는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진짜 엄마를 얻었고, 어렸을 적 자신과 화해를 한 진짜 나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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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카바야한방연구소: 로홍매 소장

1. 최우림 박사: 중국농업대학 박사, 전일본중국조선족련합회 부회장
2. 장경호 회장: 신일본미술협회 심사위원, 연변대학일본학우회 회장
3. 김광림 교수: 일본니가타산업대학교 교수, 일본도쿄대학교 박사
4. 리대원 회장: 재일장백산골프우호회 회장
5. 박춘익 사장: 주식회사BTU 사장
6. 리숙 사장: 주식회사미사끼(実咲) 사장
7. 최운학 회장: 일본훈춘동향회 회장
8. 구세국 회장: 재일조선족배구협회 회장
9. 박진우 본부장: 金子自動車 본부장 南越谷점장 국가2급정비사

일본조선족문화교류협회 계좌안내:
銀行名:三菱UFJ銀行 日暮里支店(普) 0554611
名義:一般社団法人 日本朝鮮族経済文化交流協会
【ニホンチヨウセンゾクケイザイブンカコウリユウキヨウカイ】

후원과 협찬에 관한 문의는  일본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메일주소로 보내주세요.

메일주소:info@jkc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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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화
김경화
2022년 9월 9일 7:18 오전

따뜻한글 너무 좋아요. 읽으면서 나도 엄마생각 엄청 하다 갑니다. 아옹다옹 하면서도 엄마 아버지 건강하시면 그건 자식의 복일세
~ 온가족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https://s.w.org/images/core/emoji/14.0.0/svg/1f495.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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