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우리들의 사는 이야기 34] 간병인의 수기 by 김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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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 / 윤련순, 음악편집 / 변소화

간병인의 수기

글 / 김은실

할머니, 고맙습니다!”

지식백과에 보면“간병인이란 병원, 요양소, 산후조리원, 산업체 및 기타 관련 업체기관 등에서 환자의 보호자를 대신하여 환자를 간호하고 돌보는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적혀 있다. 국가 공인 자격증까지는 아니지만 민간 단체에서 운영하는 자격증도 갖춘 엄연히 하나의 직업이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간병인이라면 안스럽게 바라보면서 혀를 찬다.

“젊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일을…”,

“나는 죽어도 그런 일은 못할 것 같아”

하면서 거의 경멸에 가까운 어조에 싼 동정심까지 섞어서 파는 이도 있었다. 그래서 간병인들은 가족이나 친구들 그리고 지인들이 알까 두려워 속이고 싶어한다. 누군가 한국에서 뭘 하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지 몰라 곤혹을 겪는다. 

이렇게 간병인을 창피해하던 내가 간병인의 수기를 투고하려고 결심하게 된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또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 오랜 시간은 그냥 걸린 시간이 아니라 내가 성숙되는 시간, 내기 익어가는 시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오랜 시간 동안 환자들을 돌보면서 나는 내가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고 좀 더 멋진 사람으로 변해가는 나를 만나게 되었다. 용기가 필요했던 것은 내 글쓰기 실력은 고중 때 어문 시간에 작문 서너 편 쓴 것이 전부이다. 나의 글쓰기 실력으로는 모든 간병인들의 마음을 대변할 수도 없고 죽음을 마주한 환자들의 그 다양한 색깔의 마음을 다 그려낼 수도 없다. 그리고 부모 또는 남편, 아내를 요양병원에 보내고 안타까워하는 그 가족들의 마음도 다 담아 낼 수 없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보았다. 나는 아무 수식도 꾸밈도 없이 사실 그대로 스케치해서 세상에 보여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간병인들의 가족들이 더는 남들 앞에서 아내나 엄마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스럽고 당당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처음 요양병원에 갔던 날을 잊을 수 가 없다. 한국에서는 비자때문에 시험을 보고 자격증을 따야 했다. 자격증만 있으면 어떤 직종에도 취직이 가능했던 것이다. 어떤 시험을 보면 더 편하게 돈을 벌 수 있을까? 또 어떤 시험이 쉬울까? 그래도 주방에서 익혀온 솜씨가 있는데 요리사 자격증에 도전해서 첫 방에 성공했었다. 하지만 요리사나 영양사를 시켜주는 데는 하나도 없고 식당 홀에서 일하라고 하는데 나한테는 힘에 부쳤다. 한동안 마음을 졸이고 있는데 친구가 자리가 났다면서 무작정 지하철을 타고 수원 모 요양원에 오라고 했다. 6섯시쯤에 도착하여 안내하는 대로 병실에 갔더니 헐! 나는 앞에 펼쳐진 광경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한 사람은 남산만한 배를 부둥켜안고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고 한 사람은 침대 옆 의료기계의 줄들이 온몸에 가득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의 환자는 코에 줄을 꼽고 있었는데 그 코 줄로 음식을 주입시킨다고 한다. 또 한 사람은 볼에 살이 빠지고 눈이 퀭하니 해골같이 된 얼굴로 초점없이 바라보는데 온 몸이 오싹했다.

“나보고 간병인하라고?” 친구가 너무 야속했다. 나는 “난 안해!”하면서 돌아섰다.

“이 일을 하던 친구가 이미 갔는데 어떡해? 다른 사람 올때까지 니가 해야 돼!”그러면서 간병인의 역할을 소개해 준다. 기가 막혔다.

간병인이 하는 역할을 들어보니 여러가지를 한다.

첫째, 환자를 목욕시키고 대소변 배출을 도와주며, 거동 못하는 환자는 휠체어에 옮겨서 재활실까지 동행한다. 벌써 목에서 욱 하고 뭔가 넘어오는 느낌이다. 속이 울렁거리고 메스꺼웠다.

“그래, 나는 간병인 체질이 아니야!”

내 아들이 먹던 것도 비위 상해서 못 먹고 시어머니 눈치 봐 가며 남편 앞에 밀어 놓던 내가 대소변을? 끔찍하다! 난 절대 안 해! 친구는 나의 표정을 살피지도 않고 듣든지 말든지 계속 주절댄다.

둘째, 환자의 체온, 맥박, 호흡 수를 측정하고 기록하며, 환자가 먹는 음식 및 음료의 양과 배설물의 양을 체크하고, 욕창이 있으면 한시간에 한번씩 체형 변경시켜야 하고 식사시에는 환자의 식사를 도와줘야 한다.

뭐, 들어보니 꽤 전문지식이 있어야 하는 직업같이 친구는 어딘가 모르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 것처럼 자부심까지 가지고 말하는 것 같았다.

“네가 아무리 말해봐라, 나는 안 한다!”.

셋째, “또 있어?” 그는 내 말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슬슬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환자에게 약을 먹여주고 확인하는 일, 의사 회진 시 환자상태에 대한 경과 보고, 증상 등의 일을 수행한다.”

“쳇, 내가 뭐 간호사가?  그건 간호사들이 할 일이지!”

마지막, 환자의 정신적 안정을 위해 말벗이 되어 주기도 해야 한다.

“어쭈! 인젠 심리 상담사까지 되라고?”

결국 나는 꼼짝 못하고 그 날 저녁 거기서 지내게 되었다. 밤이 깊어 갔다. 다음에 나를 대신해 줄 사람을 찾느라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봤지만 올 사람이 없단다. 깊은 밤, 병실 한쪽 구석에 놓인 비좁고 낮은 일인용 침대에 쭈그리고 앉아서 “날이 밝으면 일단 나가자” 이런 생각을 하는데 할머니의 애처로운 신음소리가 귀 고막을 때렸다. 무서웠다! 간암말기 환자라고 했던가?

 “우리 아버지도 간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아빠도 저렇게 아프셨겠구나!”

잠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생각밖에 절대 안 하겠다고 하던 내 의지를 내 몸이 배반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 할머니한테로 발걸음이 옮겨졌다.

“내가 왜 이러지? 아버지가 시킨 거야? 아이고 아버지, 저를 여기서 빼 주세요!”

아버지는 그 시대 기계공학 엔지니어였다. 그 시대에서 보면 괜찮은 스팩이었고 시댁이 농촌이었던 것에 비하면 아버지 덕에 경제생활도 넉넉한 편이었다. 그래서 아들들이 엄마는 금수저라고 나를 놀려 댔다.

그런데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아들이 알면 나를 부끄럽게 생각할 것 같았다. 남편도 나를 창피하게 생각할 것 같았다. 또 형제들, 친구들, 지인들은…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의 입에서는 엉뚱한 말이 잇사이로 새어 나갔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할머니는 눈물이 고인 눈으로“배가 너무 아파요”하면서 고통을 호소해 왔다. 나는 간호사실로 달려가서 간호사를 불러오고 간호사가 당직 의사를 불러오고 한동안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당직 의사가 할머니 뱃속의 물을 뽑아 준 후에야 후유 한숨을 내쉬셨다. 할머니가“색시, 고마워요!”하면서 모기소리로 들려주는데 이상했다. 마음에 드리웠던 흑구름이 싹 걷히는 기분이랄까! 그 동안 살아오면서 내가 한 일은 모두 당연한 것이었다.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딸로서, 동생으로서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할머니는 힘 없는 손에 온 힘을 모아 내 손을 겨우 잡고 연신 고맙다고 한다. 내가 누군가한테 고마운 사람이 된 기분! 내 가치가 극대화되는 순간! 나는 이 기분을 꼭 붙잡고 자꾸 되새겨 보았다.

그날 저녁 그 할머니의 “고마워요!” 하는 그 한마디가 내 발목을 이렇게 오래 잡을 줄이야! 한국 영화 제목에 “안녕하십니까?”가 있다. 그 영화는 호스피스 병원에서 있은 시한부들의 생활을 다룬 것인데 “안녕하십니까?”이 한마디 인사말로 자기가 살아있음에 감격한다. 나는 죽어가는 할머니의 한마디 “고마워요!”이 말의 무게를 알 것 같았다. 그 작은 목소리가 내 가슴에 오랫동안 울림으로 남아서 나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어 내 자존감을 키워줬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정 주지마라!

기다리는 대행자는 오지 않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나도 슬슬 적응되어 가고 있었다. 간병인들에게 어떤 환자를 담당하게 될까, 이것은 우리 간병인들에게는 직장에서 승진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였다.

요양병원에는 별의별 환자들이 다 있었다. 간병인들은 우선 환자들을 일일히 알아야 한다. 요양 병원의 환자들을 인생 이력서로 분류하자면 사장님도 계시고, 학교선생님도 계시고, 공무원도 계시고, 멋진 경찰도 계신다. 사회 직종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리고 가정배경으로 분류한다면 보호자가 높은 간부인 환자가 있는가 하면 또 보호자가 돈 많은 부자인 환자도 있고 반면에 보호자가 빽도 돈도 없는 가난한 환자도 있었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피폐해지는가 보다. 그들은 모두 다른 배경에, 다른 신분이지만 성격들은 모두 까다롭고 독특한 캐릭터들이다. 그리고 병명으로 분류하자면, 암환자, 중풍환자, 파키슨환자, 치매환자, 병명도 모를 환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더 자세히 분류하자면 자립성이 전혀 없이 누워서 먹고 마시고 싸고 하는 환자, 좀 불편하지만 자립하여 움직일 수 있는 환자, 그리고 치매환자 등등이다. 여기서 제일 쉬운 환자는 누워서 먹고 마시고 싸는 환자이다. 비유하자면 순진 무구한 갓난 아기같이 배부르면 얌전히 자고 말을 잘 못하니 이런저런 요구도 없고, 그냥 소천할 날만 기다리는 환자이다. 이런 환자가 간병인들한테는 제일 착한 환자이다. 손이 많이 가지만 신경은 많이 쓰지 않는다. 그 다음은 거동이 좀 불편하지만 자립성 있는 환자이다. 손은 별로 안가지만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환자들이다. 마치 기어다니는 아기 같은 존재다. 가끔 혼자 화장실 가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간병인이 다 뒤집어쓴다. 간병인에서 잘리는 것은 물론, 책임을 다 져야 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힘든 환자가 있다. 바로 치매 환자이다. 치매 환자는 손도 많이 가고 신경도 많이 가는 환자이다. 이런 환자는 미운 일곱 살, 아니 외계인 같은 존재다. 어디로 튈지 모른다.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일이지만 적응이 되니까 꾀도 부리고 싶어진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를 해본다. “제발 저한테는 교양 있고 이해심 많은 선생님이나 성격도 부드럽고 착한 환자를 보내 주십시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나한테는 제일 힘든 치매환자가 차례졌다. 그때부터 내 간병인 생활은 가시밭길이었다.

그 치매 할머니는 몸집까지 뚱뚱해서 우리는 뒤에서 뚱보할매라고 불렀다. 그는 평소에는 말이 별로 없었다. 무뚝뚝하고 가끔 잔 심부름을 시키는 외에는 별로 애를 먹이지 않았다. 그런데 가끔 영혼이 이웃집에 놀러 나가버리면 입에 걸레부터 물고 시작한다.

이 첩년, 네가 내 남편을 꼬셨지? @#*& 년아!”

당장 머리채라도 잡을 듯이 달려든다. 다행이 거동이 불편했으니 망정이지, 안 그러면 내 머리는 뜨거운 물에 튀긴 닭처럼 되었을지도 모른다. 치매환자는 평시에는 기운이 없다가도 치매기가 도지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억척같이 세서 맨손으로 범을 잡았다는 무송이 와도 못당 할 것 같다. 나는 간병인이라는 이름 하나 때문에 그 상스러운 욕을 고스란히 다 받아먹어야 했다. 목소리는 어찌나 우렁찬지 온 병동 사람들이 다 들어라 소리쳤다.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아 오장륙부가 요동쳤다. 하지만 아무리 억울하고 창피해도 나는 할머니 상대가 아니었다. 구석에 숨어서 우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냥 때려치우고 집에 갈까? 그래도 참아야 한다. 집에는 공부하는 아들이 있다! 학비를 벌어야지! 참자, 참자! 

이럴 때면 간병인 언니들이 와서 위로한답시고“저 할매 또 미쳤어! 그냥 무시해 버려! 할매 미워!” 하면서 같이 욕해 준다. 속이 좀 후련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힘들 때 같이 있어만 줘도 위로가 되는 것을 체험했다.

이튿날, 옆 침대 할머니가 교양 있게 뚱보 할머니한테 말을 건넨다.

“어제는 왜 그러셨어요? 도와주는 여사님한테 몹쓸 욕을 막 하고…여사님 많이 울었어요.”

요양병원에서는 간병인을 “여사님”이라고 높여서 부른다. 가끔“아줌마”라고 부르는 환자들도 있다. “사실 아줌마니까, 그래 괜찮아.” 하면서도 기분은 야릇했다. 그리고 그 환자가 미웠다. 우리도 누가 우리를 얕보고 무시하는지를 그들의 눈짓과 언어를 통해 확실하게 다 알아버린다!

 “여사님, 여기 와서 좀 앉아봐요.” 마실 갔던 정신이 돌아왔다. 나는 아무 내색하지 않고 그 곁에 가서 앉았다.

 “내가 또 실수를 했다면서요, 여사님, 미안해요!”

할머니는 어색함과 미안함이 교차된 기색이 주름진 온 얼굴에 번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헤쳤다. 젊었을 때 그는 큰 식당의 사장이었단다. 사장님! 얼마나 멋졌을까? 매일 그 큰 식당을 운영하면서 돈을 벌어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성가 시켰단다. 그런데 남편이 식당 여직원과 바람을 나서 딴 살림을 차린 것이다. 그래도 자식들을 위해 꾹 참고 그 스트레스를 다 받아 가면서 살아온 할머니 인생이 억울했다. 나는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정신이 잠깐 마실 나간 사이에 참고 참았던 그 분노가 화산처럼 폭발한 것이다. 나는 할머니가 그렇게 해서라도 마음이 좀 풀릴 수 있다면 할머니에게 당해주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우리는 이렇게 한 발짝 한 발짝 서로에게다가갔고 안개비가 옷에 스며드는 것 같이 하루하루 정이 들어갔다.

할머니는 그후에도 가끔 나를 첩이라고 욕하면서 나를 막 부려 먹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억울해서가 아니라 할머니가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났다. 이번에 간병인 언니는 핀잔을 준다.

“내가 뭐라고 했어? 정 주지말라고 했지? 몸도 힘든데 마음까지 힘들면 쓰겠어?”

“정 주지 말라!”그 말을 들으니 한국 노래 가사“다시 사랑하게 되면 정주지 않으리”라는 뜻을 좀 알 것 같다. 그래, 나도 환자에게 사랑은 주지만 정은 절대 주지 않으리라. 나는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정에 약한 나를 지키려고 모지름을 썼다!

가끔 치매발작을 일으키는 것 빼고는 할머니는 속정이 깊은 분이셨다.

할머니는 주말마다 보호자들이 들고 온 과일을 몰래 내 손에 쥐어 주기도 하고, 아들들이 나에게 인사를 안 한다고 혼을 내기도 하였다. 한번은 며느리한테 전화를 해서 자기가 입던 한복을 다 보내라고 하였다. 30년전에 할머니가 잘 나갈 때 맞춘 한복이라 비싼 거라면서 나한테 큰 선심을 쓰신 것이다. 할머니 앞에서 입어 보이고 다시 며느리한테 돌려보내느라고 시간과 돈을 썼지만 마음이 따뜻했다. 우리는 이렇게 매일매일 고운 추억을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 마음에 적금하면서 서로 조용히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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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식회사 A-YO상사(Caraz) : 전심혁 사장
2. 전일화부동산협회: 金山張虎 회장 
3. 글로벌일통 주식회사: 권호군 사장
4. 주식회사 에무에이: 마홍철사장
5. 주식회사 아시안익스프레스: 리룡식 사장
6. 주식회사 G&T: 박춘화 사장
7. 주식회사 플램핫: 리승희 사장
8. 쉼터물산: 김정남 사장
9. 주식회사 베스트엔터프라이즈: 리성호 사장
10. 삼구일품김치: 리성 사장
11. 시루바포또 유한회사: 서성일 사장
12. 주식회사JCBC: 엄문철 사장
13. 동화(東和)솔루션엔지니어링구 주식회사: 최장록 사장
14. 마즈도향양양(松戸香羊羊): 권룡산 사장
15. 주식회사 타겐고시스템연구소: 김만철 사장
16. 주식회사 위츠테크놀로지: 전호남 사장
17. 주식회사 HANAWA: 리성룡 사장
18. 주식회사 아후로시: 上田一雄 사장
19. 주식회사 PLZ: 박금화 사장
20. 스튜디오 아키라: 변소화 사장
21. 카바야한방연구소: 로홍매 소장

1. 최우림 박사: 중국농업대학 박사, 전일본중국조선족련합회 부회장
2. 장경호 회장: 신일본미술협회 심사위원, 연변대학일본학우회 회장
3. 김광림 교수: 일본니가타산업대학교 교수, 일본도쿄대학교 박사
4. 리대원 회장: 재일장백산골프우호회 회장
5. 박춘익 사장: 주식회사BTU 사장
6. 리숙 사장: 주식회사미사끼(実咲) 사장
7. 최운학 회장: 일본훈춘동향회 회장
8. 구세국 회장: 재일조선족배구협회 회장
9. 박진우 본부장: 金子自動車 본부장 南越谷점장 국가2급정비사

일본조선족문화교류협회 계좌안내:
銀行名:三菱UFJ銀行 日暮里支店(普) 0554611
名義:一般社団法人 日本朝鮮族経済文化交流協会
【ニホンチヨウセンゾクケイザイブンカコウリユウキヨウカイ】

후원과 협찬에 관한 문의는  일본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메일주소로 보내주세요.

메일주소:info@jkce.org

후원금과 협찬금은 입금을 확인한 후【一般社団法人 日本朝鮮族経済文化交流協会】명의로 령수증을 발급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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