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우리들의 사는 이야기 38]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 by 조옥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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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 / 장련, 음악편집 / 변소화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

글 / 조옥순

우리 딸 어린시절에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世上只有妈妈好)”라는  대만영화를 함께 보면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세상에서 엄마라는 존재는 아주 위대한 것 같다. 이제 나의 나이도 70 가까이 되지만 어린 시절 엄마에 대한 추억은 잊혀지지 않는다.

옛날 자류지에 가려면 강을 건너 5리를 가야 한다. 엄마 손을 잡고 5리를 걸어서 옥수수 따러 밭에 가면 사람 키보다 더 큰 옥수수가 무성하게 자랐다. 엄마는 어린 나를 밭머리에 앉아 있으라 하고 밭으로 들어가면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뱀이 나올까 무서워서 “엄마! 엄마!” 소리 지르며 엄마를 부른다. “간다! 간다! 좀만 기다려라!” 엄마도 소리치며 나에게 응답한다.

엄마가 옥수수 한 광주리를 따서 머리에 이고 나오면 너무 신나서 퐁퐁 뛰었다. 엄마는 옥수수 잎으로 다발을 틀어 내 머리에 놓고 작은 옥수수 광주리를 얹어주었다. 엄마는 큰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나의 손을 잡고 다시 5리길을 돌아간다. 중간에 쉬기도 했지만 집에 도착하면 목이 얼마나 아프던지… 아프던 기억마저 그립다. 엄마는 옥수수 껍질을 벗겨 큰 가마에 옥수수를 가득 넣고 가지 고추 된장을 얹어서 같이 찐다. 그렇게 쪄낸 노란 옥수수와 가지 고추 된장이 너무 맛있어서 허리띠를 풀어 놓고 먹군 했다. 지금은 그런 것을 먹어 볼 수 없어서 추억을 더듬는다.

내가 소학교 다닐 때이다. 엄마는 생산대의 탈곡이 끝난 뒤에 벼 마당의 돌이 섞인 벼를 이고 집으로 돌아와 방바닥에 말렸다. 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엿주머니를 쥐면 엄마는 바가지로 퍼서 주머니에 담고 방아에 쪄서 엿을 달였다. 엿을 팔아 자식들에게 쌀밥을 먹이기 위해 엄마는 밤새 엿을 달였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엿이 다 만들어져 있었다. 가마 뚜껑을 엎어 놓고 그 위에 밀가루를 살짝 펴서 놓고 엿을 올려 놓았다. 엿이 식어서 굳으면 깨서 밀가루를 무쳐 자루에 담아 엿장사 하러 나간다. 어린 나도 어깨에 메고 엄마 따라 촌마다 집집마다 다니며 “엿 삽소! 엿 삽소!”하면 어떤 집에서는 쌀로 바꿔주고 어떤 집에서는 안 바꾼다 한다.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쌀로 다 바꾸고 해가 저물어져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힘들게 살았어도 그 때가 그립고 되돌아 가고 싶은 생각이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참 세월이 야속하게도 어느덧 나도 로년에 접어 드는 나이가 되었으니 섭섭하기만 하다.

내가 어른이 되어 시집을 갔지만 본가집에서 살았다. 남편은 심양 부대에 있어서 본가집에서 출산을 했는데 엄마는 처음 맞이한 손녀를 애지중지하며 7살까지 키워주었다. 손녀가 첫돌을 맞이했을 때 엄마는 색동저고리와 치마를 정성스럽게 직접 만들어 입혀주었고 그 색동저고리와 치마는 내가 오래동안 보관하다가 몇 년 전에 딸에게 주었다.

아들 딸을 키우고 살림을 하면서 나는 남 모르게 속을 많이 태웠다. 자존심이 강해서인지 남들 앞에선 아무런 티도 내지 않고 살려고 했다. 딸을 출세시키려고 애를 쓰다가 그만 어린 나이에 가정의 짐을 전부 다 메웠다. 한 자식을 건지기 위해서 다른 한 자식은 무지한 고생을 시켜야만 했다.

옛날 생산대에서 집체로 일할 때 가정에 일군이 많아야 가을에 계산할 때 돈을 조금이나마 탈수 있었고 가정에 일군이 적으면 빚만 불어났다. 그 당시 엄마는 시름시름 아프다 보니 아버지가 혼자 6식구 먹여 살려야만 했다. 아버지는 중학교도 채 마치지 못한 나한테 맏이여서 일찍 사회에 나와 벌어야 한다고 말했다. 할 수 없이 학교를 그만 두고 아버지를 도와 16살부터 일하게 되었다. 16살부터 사회 생활하니 힘든 건 더 말 할 것도 없고 그 후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고 내 나름대로 온갖 정성을 다하여 키웠다. 이제 와서 문장 같은 것을  쓰려고 하니 서두 떼기도 힘들었지만 마음의 글을 쓰기로 했다.

나의 엄마는 자식들에게 정성껏 음식을 해 먹이고 깨끗하게 옷을 입혀서 동네에서 알뜰하다고 소문이 났다. 그런 엄마는 지금 90세가 되어도 여전히 알뜰해서 요양원에서도 소문이 자자하다. 나도 그런 엄마를 보고 자라서인지 옷도 항상 다른 애들보다 깔끔하게 입히며 동네에 나가면 모두 이쁘다고들 칭찬해주었다. 딸은 그렇게 곱게 자라서 소학교 때부터 공부성적도 항상 5등 안에 드니 별로 공부하라는 잔소리 없이 키웠다. 그와 반대로 아들은 중학교 때부터 엄마 속 누나 속을 썩인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가정이 파탄이 날 정도까지 가도 딸하고 나는 나쁜 자식이라고 욕 한번 하지 않았고 언젠가는 꼭 셈이 든다고 믿고 뒷바라지를 계속 했다.

딸이 대학시험 치는 날, 남편이 그 당시 거액의 돈을 사기당하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딸은 반은 류학, 반은 돈을 벌기 위해 일본에 가야만 했고 석사 학위 따기까지 숱한 아르바이트를 해서 가정의 빚을 갚는 것과 생계유지를 위해 수고해야 했다. 외롭다고 울며 전화 오고 힘들고 지친다고 울며 전화 오면 젊을 때는 자고 일어나면 또 새 힘이 난다며 말해주는 나도 마음이 아팠다. 엄마로서 지금도 딸을 고생시킨 것이 마음에서 내려 가지 않지만 이젠 아들도 어엿한 가장으로서 가정을 이끌어 나가고 있고 외손녀와 손자를 보면 지난날 쓰라림을 달래며 마음의 여유를 찾게 된다.

나는 62살에 세번째로 한국길에 나섰다. 첫번째 갔을 때는 남편이 중국교포로동자협회 회장을 하다가 북한간첩으로 오해를 받는 바람에 남편과 나는 15일동안 눕지도 못하고 앉아 있어야만 하는 구치소 작은 독방에 15일 구류되었다. 나는 한국간지 반년만에 남편과 같이 북경으로 강제송환 당했다. 두번째 걸음은 아들이 사고 칠까 걱정이 되어 반년만에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번엔 늦게 나마 열심히 일해서 딸의 지난날 마음고통을 보상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일은 생각처럼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일년 일하고 자리 잡힐 만 하니 뜻밖에 유방암 진단을 받게 되었다. 하늘이 노랗게 보이는 것 같았고 혼자 대성통곡하고 말았다. 세상이 어쩌면 나에게 이럴 수가…

처음에 딸 하고는 연락을 안하고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엉엉 울었다. 한편으로 한심스러웠고 한편으로 아들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몇일이 지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할 수 없는 일이라 마음을 단단하게 먹기로 했다. 치료 과정에 대하여 처음엔 간단하게 생각했는데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몹시 힘들었지만 언제 한번 나약하게 생각해 본적은 없었다. 나에겐 엄마가 있고 귀한 자식들이 있기 때문이다.

항암제치료, 수술, 방사선치료 등 몇달을 거쳐 다 마치고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자기관리를 하면서 벌써 5년이 지나니 완치판정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일단 일을 하면 어떤 귀한 손님이 와도 휴가를 얻기가 힘들다. 수술할 때도 어느 누구도 오지 못하고 혼자 올라가고 내려가고 수속을 다 밟고 수술 전날에 일본에서 딸과 외손녀가 와줘서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 외손녀는 수술 출입문 앞에서 수술이 끝날 때까지 서서 외할머니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에서 수술까지 마치고 중국에 들어가 아들 가족과 따뜻한 한때를 보내고 일본에서 3개월 휴양했다. 그 때 딸이 일본 조선족 노래자랑에 참가하게 되어 외손녀의 손을 잡고 그 현장에 가서 관람했는데 지금도 마음에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90세가 되는 엄마는“걱정하지 말라, 넌 90까지 산다, 엄마 말 믿어라”며 나를 위로해주고 나에게 힘을 불어넣어 준다. 보드라운 손으로 수술자리를 어루만져 주는 이는 세상에서 단 한사람인 엄마 뿐이다. 옛날 생산대에서는 집체로 일하고 가을에 수확한 것을 집집마다 나누어 준다. 그러면 옥수수 몇 마대 씩 방에 쌓아 놓고 손으로 다 까야 한다. “이렇게 많은 옥수수를 언제 다 까오?” 하며 엄마에게 물어보면 “빨리 자라. 엄마가 다 깐다.”라고 대답한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마술사가 왔다 간 것처럼 옥수수 알만 마대에 담겨있었다. 밤을 새워가며 자식을 위해 일을 하신 엄마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그런 엄마의 손이 어쩌면 이렇듯 보드라운지…

의사가 지속적으로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해서 나는 하루 한시간의 운동을 빼놓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다. 큰 고통을 겪고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지금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코로나로 인하여 힘든 현실이지만 차분하게 받아 들이다 보면 빛은 보일 것이다. 좋은 일을 기대하고 작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힘을 내려고 한다. 가화만사성이란 말처럼 코로나로 더 끈끈해진 우리 가족에게 앞으로 좋은 일들이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면 행복한 기분이 든다. 예쁜 손녀와 멋진 손자를 보면 충전이 되고 아들딸  사위며느리 오붓하게 살아가고 있어서 마음이 놓인다.

내가 집에서 키우고 있는 싱싱한 화초처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항상 푸르게 스스로를 가꾸어 나가고 싶다. 한편으로 나의 엄마를 잘 돌보고 한편으로 매일 자식들을 위해 기도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나의 엄마를 좋아하듯이 나도 나의 자식에게 그런 엄마가 되고 싶어서 글과 함께 선물을 사서 일본에 있는 딸에게 보낸다.

아래 내용을 클릭하시면, 협찬기업 리스트, 협찬개인 리스트, 협력단체 등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주식회사 A-YO상사(Caraz) : 전심혁 사장
2. 전일화부동산협회: 金山張虎 회장 
3. 글로벌일통 주식회사: 권호군 사장
4. 주식회사 에무에이: 마홍철사장
5. 주식회사 아시안익스프레스: 리룡식 사장
6. 주식회사 G&T: 박춘화 사장
7. 주식회사 플램핫: 리승희 사장
8. 쉼터물산: 김정남 사장
9. 주식회사 베스트엔터프라이즈: 리성호 사장
10. 삼구일품김치: 리성 사장
11. 시루바포또 유한회사: 서성일 사장
12. 주식회사JCBC: 엄문철 사장
13. 동화(東和)솔루션엔지니어링구 주식회사: 최장록 사장
14. 마즈도향양양(松戸香羊羊): 권룡산 사장
15. 주식회사 타겐고시스템연구소: 김만철 사장
16. 주식회사 위츠테크놀로지: 전호남 사장
17. 주식회사 HANAWA: 리성룡 사장
18. 주식회사 아후로시: 上田一雄 사장
19. 주식회사 PLZ: 박금화 사장
20. 스튜디오 아키라: 변소화 사장
21. 카바야한방연구소: 로홍매 소장

1. 최우림 박사: 중국농업대학 박사, 전일본중국조선족련합회 부회장
2. 장경호 회장: 신일본미술협회 심사위원, 연변대학일본학우회 회장
3. 김광림 교수: 일본니가타산업대학교 교수, 일본도쿄대학교 박사
4. 리대원 회장: 재일장백산골프우호회 회장
5. 박춘익 사장: 주식회사BTU 사장
6. 리숙 사장: 주식회사미사끼(実咲) 사장
7. 최운학 회장: 일본훈춘동향회 회장
8. 구세국 회장: 재일조선족배구협회 회장
9. 박진우 본부장: 金子自動車 본부장 南越谷점장 국가2급정비사

일본조선족문화교류협회 계좌안내:
銀行名:三菱UFJ銀行 日暮里支店(普) 0554611
名義:一般社団法人 日本朝鮮族経済文化交流協会
【ニホンチヨウセンゾクケイザイブンカコウリユウキヨウカイ】

후원과 협찬에 관한 문의는  일본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메일주소로 보내주세요.

메일주소:info@jkce.org

후원금과 협찬금은 입금을 확인한 후【一般社団法人 日本朝鮮族経済文化交流協会】명의로 령수증을 발급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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