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우리들의 사는 이야기 27] 울 줄 모르는 사람은 웃을 줄도 모릅니다 by 오기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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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 / 윤련순, 음악편집 / 변소화

울 줄  모르는 사람은 웃을 줄도 모릅니다

글 / 오기활

“인생 70고래희”라는데 나는 어느덧 70 대중반이지만 지금도 신사물에 호기심이많고 언행이 천진하다.

그런데 요즘에 셈이 든다고 할가, 종종 지난날을 돌아보며 나에게“대체 어떻게 살아왔는가?”고 자문을 한다.

그래서 얼핏 생각으로“나는 눈물도 헤푸고 웃음도 헤푸게 살았다”는 엉뚱한 답으로 남들을 당황게 한다.

그리고는 한편으로 어릴때 어른들게서 들어온 “남자가 눈물을 훌리면 사나이가 아니다”는 말에 걸려“울 줄 모르는 사람은 웃을 줄도 모른다”고  변명한다.

스스로 자신을 진맥하면 나는 확실히 울음도 헤프고 웃음도 헤프다.

어느 신경정신과 의사는 “남자들이 녀자들보다 알콜중독자가 세 배이상이 됨은 남자가 녀자보다 눈물을 자주 흘리지 않기 때문이다”며 ”남자들은 알콜의 도움으로 자신의 분노나 슬픔을 해소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알콜의 도움이 없이 자신의 성장과 순박한 동정심으로 웬간한 자극에도 순간사이에 눈물을 내린다.

나는 2살에 엄마를, 10살에 아버지를 잃은 고아로 16년을 큰집에 얹혀서 5촌 12명이 한구들에서 살았다. 그러니까 아마도 제설음에서 흘리는 눈물이 많았다는 생각이다.

1  먼저 곡문(哭门)으로 들어가 말하겠다.

나는 동정심에선지 아니면 소박한 계급감정에선지 아무튼 “뢰봉”영화를 보면서도 손수건을 찾는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수록 엄마사랑갈증으로 엄마생각이 나서 엄마의 얼굴도 기억이 없는 내가 혼자서 어릴때 누님들을 따라 배운 노래로 “엄마생각”을 부르려고 해도 노래말의 애절함에 목이 메여 한번도 끝까지 불러 못봤다.

“엄마생각”의 노래말이다.

1

쓸쓸한 가을바람 불어 오면은

사랑하는 우리 멈마 보고 싶어요

엄마죽어 나비되고 내가 죽으면

꽃이 되여 그때마다 안아주세요

2

동생아 울지 말고 어서 자거라

네가 울면 내 눈에서 피가 흐른다

 …. …

 1절부터 가슴이 저려나기 시작해서 2절은 목이 메여 계속하여 부를래야 부를수 없었다.

나에게는 두번이나 대성통곡을 한 과거사도 있다.

첫 번은 내가 큰집에서 한집식구(食口)로 16년을 살다가 1975년 국경절에 결혼하고 이듬해 1월에 큰집에서 세간을 나던 날이다.

“한집식구”란 한지붕을 쓰고 살며 한집식솔들이 한가마 밥을 한밥상에서 함께 먹는 식(食) 구(口)들을 말한다.

食口란 먹각(食)질을 하는 입(口)을 말한다. 입(口)은 살아있는 인간 명수계산의 제1 인체구조의 근거이다.

하기에 한집의 식솔이 몇인가를 확인할 때 그집에 食口가 몇이냐로 묻고 그 나라 인간이 얼마냐를 “그나라 인구(人口)가 얼마냐”로 묻고 계산한다. 

그러니 내가 큰집이란 대가정에서“한집식구”사랑과 대접을 16년이나 받다가 래일부터 “딴식구”로 딴가마밥을 먹겠으니 이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로 설음이 앞서며 눈물이 앞을 가리였다.

어렸을때 어른분들이 하던 말인데 “한집식구가 남이 되는 시작이 형제들이 결혼하고 세간을 나는 그 날부터다”고 하였다. 뜻인즉 친형제간이 한집에서 살다가 결혼하고 세간을 나면서부터 무촌이나 1촌이던 촌수가 2촌… 4촌… 6촌…8촌…으로 늘어나면서 나중에 촌수가 멀어져 남이 된다는 것이다.

이 말이 친형제가 남이 된다니 처음에는 무섭게만 들렸는데 나이가 들면서 보고, 듣고, 생각해 보니 그때 그 말씀이 정말 도리가 있는 맞는 말씀이였다

그러니 내가 큰집에서 살면서 뼈가 굳고 살이 졌는데 래일부터 ‘딴식구”로 “남”이 된다니 나로서 대성통곡을 안 할수 없었다.

그날 오전 11시경 나는 소수레에 앉아서 얼어붙은 북강을 지나면서 서쪽에 자리한 큰집을 향해 “형님에!ㅡ 형님에!…형님에!” 하며 애절하게 부르며 대성통곡을 하였다.

이 밖에 내가 대성통곡을 하는데는 이런 원인도 슴배여 있었다.

사촌형님(오기풍)은 나의 둘도없는 엄부형(严父兄)이였다. 왜냐면 나와 형님의 년차가 18년, 형님과 아버지의 년차 역시 18년이라 형님은 명실공한 나의 엄숙하고 당당한 아버지였다.

게다가 몸이 마른 명태마냥 마른  형님은 슬하에 무남3녀로 백부님은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자 마자 “빨리 서방을 가서 아들을 낳아 큰집의 양자로 맡기고 형님의 앞을 세우라”고 하였다.

약한 다리에 침이라고 형님은 중년에 신장병으로 앓다가 마이시린(链霉索)중독에 걸려 눈이 잘 보이지 않았고 걸음이 휘청거려 동네에서 약자의 취급을 받았다.

70년대는 나라가 계획경제때라 모든 생필품이나 설명절 돼지고기 분배때 큰집에 내가 없으면 동네의 없이움을 당할 것 같아서 큰집의 처지를 생각하면 할수록 큰집이 측은하고 형님이 불쌍하고 가련하였다. 그래서 형님을 부르며 대성통곡을 한 것이다…

두 번째 대성통곡은 아들의 결혼때였다.

일본에 간지 10년이 되는 아들이 2010년 9월16일에  도문서 결혼하고 몇칠후에 돌아가던 날이다.

아마도 아들의 결혼에 아버지가 대성통곡을 했다면 청자가 쉽게 곧이듣지 않을 것이다. 시집가는 딸이면 몰라도 새 사람을 데려오는 아들의 결혼식에 기뻐서 절로 나오는 춤판에 대성통곡을 했다니 말이 되느냐며 친지들마저 머리를 돌렸다.

아들이 결혼하러 집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며칠전부터 이런 생각으로 며칠밤을 하얗게 보낸적도 있었다.

ㅡ1976년10월 28일에 금쪽같은 아들을 낳고 조실부모로 하여 아들로 못 지내본 내가 아버지로 되니 얼마나 기뻤던가. 게다가 하늘나라로 간 어머니가 매년 제사날(음력 10월 20일)이면 흰 눈을 하사하여 우리 형제들이 어머니가 하늘에서 흰이불을 보냈다며 기뻐했는데 글쎄 아들의 출생일에 때아닌 큰눈이 내렸으니 장손의 출생에 하늘에 계시는 어머니가 흰이불을 보냈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기쁘던지….

ㅡ아들의 예비이름을 12가지로 작명하고 나중에 우리 민족의 백두대간 불로송이 되라는 욕심에서  茂松으로 작명하고 게속하여 큰 조카(동생의 큰 아들)의 이름을 茂成, 둘째 조카의 이름을 茂林, 3형제의 공명이 松成林이니 실로 명실공한 백두대간의 불로성이 될 것이라 확신하면서…

ㅡ아들의 소학교 입학부터 중학교까지 부자간이 함께 반급벽보를 꾸렸고…

ㅡ북경아세아운동때 아들이 부탁하던 로라스케트를 사느라고 길치매인 이애비가얼마나 동분서주 했던가……

ㅡ부모들의 가슴속에 잊을 수 없는 아픈 일로 자리잡은 일로, 아들이 애비의 휴대용록음기를 애비 몰래 갖고 다니다가 잃어버리고 겁을 먹고 부모들 모르게 새로 록음기를 사려고 16살 나이에 부모 몰래 3개월간 도문시립병원을 1200그람의 피를 팔았다는 소식을 뒤늦게 남을 통해 듣고서 울분으로 터지는 가슴을 짓누르며 시립병원 원장을 찾아가 미성년의 피를 사서 이름을 콱 날리라고 울을으로 호소하던 일이 어제 같은데…

ㅡ아들이 일본류학을 간다니 엄마는 농촌에 가서 송아지 한마리를 사서 그자리에서 잡고 소고기를 삶아서 말린 고기가루로 짐을 꾸려주고 아들에게 배 고플때 아무때나 물에 풀어 먹으라고 당부하고도 떠나는 아들에게 고웁게 포장한 국기를 주면서 어디서나 애국심을 간직하라고 당부하던 모습에 내가 아들에게 선물로 간직했던 라폴레온 힐이 쓴 “성공의 법칙”을 주던 그때가 어제 같은 내 아들이….

금쪽같은 아들이 결혼을 하고 이제부터“딴식구”로 된다니 흐르는 눈물을 억제할수 없었다.

게다가 남들의 말에 “유능한 아들은 국가 아들이고 효도하는 아들은 사돈집 아들이며 무능한 아들이 내 아들이다”고 하는데 이제부터“유능하고 효도하는”내 아들이 “남의 아들”로 된다니 이 애비는 당금 아들을 잃는 것마냥 “아들아!”를 부르며 대성통곡을 하였다. 

그래서 아들이 집을 나서는 모습을 감히 볼 수 없어서 집에서 볼멘소리로 “아들아, 아들아…”를 부르고 또 불렀다.

2 계속하여 우리집 소문(笑门)으로 들어가 본다.

나는 선천적이라고 할가 아무튼 웃음의 역할을 언녕 “유모아”로 체험한데서 재직때부 연길집 출입문의 벽거울에 “오늘 세번웃엇습니까?”를 유표히 붙혀놓고 매일매일 출퇴근 때마다 거울을 마중하고 크게 세번 웃는것을 습관화 하였다.

나는 어디서나 나를 소개할때면 나의 이름 석자는 오짜, 기짜, 활짜로 오기활, 한자로 해자하면 나라 吴, 터 基, 살 活로 “吴나라에 基본상 살活아가는 사람이다”고, 또 오기활을 꺼꾸로 부르면 “활기오”라“나는 활기스러운 사람이다”며 청자들의 박수와 웃음을 만들군 했다.

내가 이 글에 특필하려고 함은 아들의 “제철효도”로  우리를 남들이 칭하는“기쁨이네 가정” 웃음 얘기다.

12년전 결혼한 아들이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하는 약속이였다.

“나는 앞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잘 배워주는 것으로 부모효도를 하겠습니다”

그때 나는 아들의 이 말에 희망을 품지않고 그저 흘러보내는 말로 “그래라, 그래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후에 우리가 아들집에 다녀가보니 아들내외가 “우리말로 해라”를“가훈”으로한 것 같았다.

아들과 며느리는 얘들이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우리말을 가르쳐 손녀가 두살때 벌써 우리말로 “99”를 7단까지 외우는 동영상을 보내와서 우리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 동영상이 우리 친적집 모두에게 퍼지며 “아버지가 박사니깐…”은 경탄을 자아냈다. 심지어 며느리는 한국 나들이를 할 때마다 얘들을 데리고 다니며 한국의“어린이 집”에 보내여 우리말을 배우게 하였다.
공든탑이 무너지랴?!

5살짜리 손녀의 우리말 수준은 한국드라마에서 나오는 동역에 못지 않았다. 우리가 전등이나 텔레비를 “죽여라”고 하면 그 자리로“할아버지, 텔레비를 죽여라가 아니라 텔레비를 꺼라고 해요”라며 어른들의 틀린 말과 사투리를 바로잡아 주었다.

한번은 손자가 놀음에서 손을 떼고 나한테 찾아와서 “내가 지금부터 무슨 일을 하랍니까?”는 물음에 내가 별 생각이 없이“저기 가서 자라”고 했더니“내가 우리 말로 했는데도 할아버지가 알아 못듣는다”며 이상해 하였다.

모두가 알다시피 입(口)의 역할이 식(食)과 설(说)이라면 입(口)이 우리 3대를 “한집식구(食口)”로 만들었다.

한집에서 한가마 밥을 한상에 먹고 모두가“딴말”이 아닌“우리말”을 하니까 웃어도 함께 웃고 욕해도“인민전”을 벌리니 이것이“한식구”가 아니고“딴식구”겠는가.
얘들의 “우리말”은 효도와 정비례를 하였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손군들은 우리방을 찾아와 배꼽인사를 하면서“할아버지 할머니 편히 주무셨어요”“할아버지 할머니 편히 주무세요”라며 인사를 하였다.
한번은 3살짜리 손자가 제일 좋아하는 딸기를 사왔더니 손자는 받아쥔 딸기를 먼저 맛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부터 시작하여 누나의 몫까지 챙기더니 나중에 자기의 몫이 없게 되자 울음을 터뜨릴 뿐 자기로 분배했던 딸기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손군들로 하여 일본이 이국이라는 감이 전혀 없었으며 심지어 인사말이라도 일본말을 배워야 하겠다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어디를 가나 손군들이 동행하니깐.

한번은 며느리 생일에 내가 아들며느리 몰래 “생일선물 깜짝쇼”를 했더니 아들 며느리가‘말도, 글도 모르는 할아버지가 어떻게…?’하면서“동전눈”을 하기에나에게 전담“번역관”(손녀)이 있다고 하니 모두 박수와 함께 큰 웃음을 터뜨렸다.

특히 “기쁨이네 가정”에 웃음자랑거리로 우리 아들이 일본 케이오대학의 방문학자로 가족을 데리고 2년간 미국하버드대학에 연수하는 사이에 며느리가 아이들에게 우리 글과 한자를 열심히 배워 준데서 지난 1월에 손자손녀가 련명으로 쓴 편지“우리가 우리 글로 편지할줄을 몰랐죠?”와 동영상을 받은 것이다.

아들네가 보내온 동영상은 손녀의 아리랑 노래에 흥이 난 손자의 피아노 반주, 할아버지 할머니 수연례에 올리는 축수의 말과 노래…그리고 한집식구들이 한상에서 먹는 푸집한 저녁밥상이였다. 지금 우리네는 부모, 아들, 딸들이 비록 3국에서 사는 리산가족이지만 3국에서 보내오는 동영상과 우리말 소통으로 여전히 행복한“한집식구”라는 기분이다.

사랑하는 할머니, 할아버지:

그동안 잘 보냈어요? 가예랑 수민이랑 할아버지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요. 내가 우리말로 편지할 줄 몰랐죠? 나는 한국말도 잘 쓸수 있어요. 가예랑 수민이는 미국학교에서 매일 재밋게 보내요. 공부도 제일 잘해요. 그래서 반 친구들은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나를 선생님이라며 나한테 물어봐요. 그러면 가예가 배워줘요. 그리고 11월이 되면 우리도 백신을 맞을수 있다고 해요. 참 잘 됐죠? 그리고 우리는 학교에서 한주일에 한번씩 코로나 검사도 하고 있어요.

 요즘 우리식구는 4명이 함께 학교에 다녀요, 수민이와 가예가 같은 뻐스로, 아빠랑 엄마랑 같은 뻐스로 다녀요 그리고 아빠랑 엄마랑 다이어트를 하고 있어요. 아빠가 많이 날씬해졌어요. 3키로 뺏어요. 76키로까지 뺄거래요. ㅎㅎㅎ 우리식구들 재밌죠.

오늘은 이만 끝!

2021년 10월 24일, 가예랑 수민이가.

“우리 글로 편지할줄 몰랐죠?”

“한 민족을 형성하는 5대 요소중 가장 기본은 언어이다” “민족이란 언어의 공동체이다.”(황유복교수) .

손자손녀들의 “우리말”과 “우리글”, “우리노래”로 우리 3세대 “기쁨이네 가정”에 “일일신 우일신”(日日新又日新)으로 아름다운 계절꽃을 피워 준다.

세계적인 명인들의 말로 이 글을 맺는다.

“눈물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의 선물이다”

“ 눈물을 자유로이 활용하는 것에 부끄러울 까닭은 어디에도 없다” (일린 로이 매기니스)

“지혜로운 사람은 남들이 할 수 없다는 일을 해낸 사람이고 어리석은 사람은 남들이 다 하는 것도 못한다는 사람이며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웃겨도 웃지 않는 사람이다” (성공의 대가 트레이시)

“웃지 않고 보낸 날은 실패한 날이다” (챠플린)

이로 보면 나는 울음이란 하늘의 선물을 만끽하면서 웃음으로 어리석지 않는 살맛나는 기쁜 삶을 사는 인간이라 하겠다.

“지금은  공부하는 시간이래요”

부언으로 “우리말로 해라”는 아들의 제철효도, 자녀들에게 우리말과 우리글 배워줌에 조금도 게을리지 않는 며느리에게 감사, 감사, 또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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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식회사 A-YO상사(Caraz) : 전심혁 사장
2. 전일화부동산협회: 金山張虎 회장 
3. 글로벌일통 주식회사: 권호군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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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주식회사 G&T: 박춘화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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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주식회사 위츠테크놀로지: 전호남 사장
17. 주식회사 HANAWA: 리성룡 사장
18. 주식회사 아후로시: 上田一雄 사장
19. 주식회사 PLZ: 박금화 사장
20. 스튜디오 아키라: 변소화 사장
21. 카바야한방연구소: 로홍매 소장

1. 최우림 박사: 중국농업대학 박사, 전일본중국조선족련합회 부회장
2. 장경호 회장: 신일본미술협회 심사위원, 연변대학일본학우회 회장
3. 김광림 교수: 일본니가타산업대학교 교수, 일본도쿄대학교 박사
4. 리대원 회장: 재일장백산골프우호회 회장
5. 박춘익 사장: 주식회사BTU 사장
6. 리숙 사장: 주식회사미사끼(実咲) 사장
7. 최운학 회장: 일본훈춘동향회 회장
8. 구세국 회장: 재일조선족배구협회 회장
9. 박진우 본부장: 金子自動車 본부장 南越谷점장 국가2급정비사

일본조선족문화교류협회 계좌안내:
銀行名:三菱UFJ銀行 日暮里支店(普) 0554611
名義:一般社団法人 日本朝鮮族経済文化交流協会
【ニホンチヨウセンゾクケイザイブンカコウリユウキヨウカイ】

후원과 협찬에 관한 문의는  일본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메일주소로 보내주세요.

메일주소:info@jkce.org

후원금과 협찬금은 입금을 확인한 후【一般社団法人 日本朝鮮族経済文化交流協会】명의로 령수증을 발급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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