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우리들의 사는 이야기 8] 뉴질랜드에서의 그때 by 남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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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 / 장련, 음악편집 / 변소화

뉴질랜드에서의 그때

글 / 남철우

어느 날 친구가 핸드폰으로 연변TV에서 방송한 최승화 가수가 부른 노래 (모두 다 갔다) 동영상을 보내왔다. 노래 가사 내용처럼 중국의 조선족들은 잘 살아 보겠다고 너나 없이 한국, 일본, 미국, 러시아, 유럽, 오세아니아 등등 세계 각국의 어디에나 모두 다 나갔다. 사랑하는 가족과 눈물로 헤어져서 뿔뿔이 흩어져 사는 현실 사회의 진실한 실정을 제대로 반영한 좋은 노래이다. 이 노래를 들으니 가족과 다년간 갈라져 있었던 지나간 뉴질랜드에서의 그때 추억이 뇌리를 스쳐 떠 오른다. 중국에서 개혁개방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전국각지에서는 썰물이 터지듯이 여기저기에서 돈을 벌려고 서둘러 해외출국 열풍에 가담하였다. 오직 가족과 자식위해 옛날의 못 살던 전철을 다시 밟지 않고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부모의 도리로 돈 벌려고 목숨 걸고 고향을 떠나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세계 모든 지역에로 많이 진출하여 나갔다. 그렇게 시대 흐름의 물결을 따라 나도 해외로 출국하기로 하였다.

<뉴질랜드로 출국>

여행사를 통하여 뉴질랜드 비자를 받고 난생 처음 머나먼 외국행 출발로 가족과 친척

들의 배웅을 받으면서 연길 기차역에서 열차에 올랐다. 기차는 밤새도록 달려서 장춘역에 새벽에 도착하였는데 도로 옆에는 눈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우리 일행은 장춘에서 추워덜덜 떨면서 광주행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비행기를 타고 두 시간 후 지상을 내려다보니 백색 눈이 안보이고 황토색 산들이 나타나다가 점점 녹색의 산야가 보이었다. 몇시간 후 광주백운 공항에 착륙하여 밖에 나와보니 파란 풀, 빨간 꽃, 야자나무가 무성하여 우리는 놀라면서 “와, 정말 중국 땅이 크고 넓구나” 하였다. 북방은12월이면 엄동설한에 눈보라 휘몰아치며 추운데 남방의 광주는 몸에 땀이 날 정도로 더워서 여름옷으로 갈아 입었다. 일주일후 우리 일행은 광주에서 비행기타고 출국하여 싱가포르를 경과하여 뉴질랜드의 오클랜드공항에 도착하였다. 입국 검사대 앞에서 입국카드를 작성하는데 초비상이 걸렸다. 우리 세대 연령대에는 영어를 전혀 배우지도 않아 달랑 (오케이, 노 우) 만 아는데 어떻게 영어로 쓰겠는가? 본인의 신분과 동기를 안되는 수준으로 겨우 쓰고는 입국심사를 받으려 하니 영어로 까다롭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뭐라고 하는데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어서 정말 난처하였다. 태어나 처음 영어권 사람들과 대화하여 묻는 말에 대답을 못하니 묻는 사람도 답하는 사람도 너무 답답하였다. 그러니 우리를 잠시 안쪽 대기실에서 기다리라 하더니 10여분후 중국어 통역관을 불러와 이것저것 많은 질문에 대답하였더니 OK하면서 여권에 도장을 찍고 통과시켜 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어느새 어두운 저녁이 되였다. 우리는 차를 타고 한시간 이상 달려서 오클랜드시 노스 코트 한인교회에 도착하여 보니 많은 연변, 료녕, 흑룡강성 지역의 사람들이 이미 하숙을 하면서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오클랜드 도심을 바라보면서

<뉴질랜드의 취업난>

뉴질랜드는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이 모인 이민국가인데 제일 큰 도시인 오클랜드는 130만 인구로서 고층건물이 적고 저층건물로 이루어 졌으며 땅 공간마다 잔디풀이 심어져 있으며 일년내내 꽃이 피고 수풀이 우거진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교통수단은 공공버스 선로가 일부분에만 국한되어 있고 택시는 전화 예약제로 운영되어 길가에서 손을 들어도 탑승할 수 없고 예약없이 승차는 불가능하였다. 대중교통이 열악하여 자가용 차는 필수로 있어야 했다. 뉴질랜드는 워낙 인구 적고 공업생산이 없어 일자리가 적기에 외국에서 오는 많은 유능한 사람들도 취업이 어려웠고 우리는 더욱 언어가 통하지 않기에 일자리 찾기가 더 힘들었다. 뉴질랜드에 도착하여 몇 주 지나갔지만 일자리 못 찾아 속만 바짝 타 들어 가면서 밥맛은 없어지고 체중은 줄어들며 한숨만 내쉬었다. 우리보다 앞서 온 많은 사람들도 취업을 하지 못하여 애간장을 태우고 있었다. 미리 생각한 것처럼 아이러니하게도 외국에서의 생활이란 스타트부터 순탄하지 않다는 예고를 암시하는 느낌이 다가오고 있었다.

1월달의 남반구는 북반구와 정반대로 제일 무더운 여름철이기에 소낙비가 자주 내렸다. 가뜩이나 속을 태우며 백수 생활하는데 그날따라 번개와 우레소리가 요란하더니 갑자기 소낙비가 억수로 퍼부어 댔다. 그렇게 한꺼번에 많은 량의 폭우가 오는 것을 처음 보았다. 기숙사 유리창에 퍼붓는 빗물이 줄줄 흘러내리는 광경으로 하여금 마음이 쓸쓸해지면서 폭우의 요란한 울림소리와 함께 나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한바탕 울었다. 왜냐하면 생소한 영어권의 이국 땅에서 앞으로 가야할 길이 너무 막막하여 어떻게 할 방도가 없고 창가에 기대여 서있는 자신의 슬픈 처지가 쏟아지는 빗물과 흡사하게 너무 슬펐기 때문이었다. 많은 경비를 투자하여 생소하고 머나먼 영어권 나라로 찾아왔는데 언제 본전을 뽑고 언제 생활비를 벌겠는가 하고 의구심만 생기며 앞으로의 희망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자기도 모르게 한숨만 앞서면서 어떠한 해결책도 생각나지 않고 밤에는 별의별 잡생각에 잠들 수 없어 이리저리 뒤척이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곤 하였다.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어느 날 마음씨 좋은 한국 이민자의 알선 도움으로 가정집 청소, 건물 페인트칠 등등잡일을 하였는데 하루 일하고 이틀이상이 공백인 하루살이 단기 일이기에 마땅치 않았다. 그렇게 그럭저럭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데 어느 날 한인 생활정보 신문에 실린 자동차정비 구인광고를 보자마자 이튿날 무작정 부랴부랴 찾아가서 면담을 하였다. 한국 이민자 비즈니스로 자동차 정비공장을 차린 사장님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의 손을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일을 하던 사람이 아니라 하였다. 손이 거칠지 않고 보들보들하냐며 공구를 주면서 나사를 풀고 조여 보라고 하였다. 원래 차 수리 경험이 많은 내가 능숙하게 공구를 다루니 “기계는 좀 만져 보았군” 하고는 집에 돌아가서 기다리면 생각해 보고 며칠 후에 소식을 주겠다고 하였다. 기다리라는 말은 아예 안된다는 말보다 못하였다. 나는 여기서 일을 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사정하며 말하였더니 그러면 내일부터 임시 출근하되 일하는 것을 지켜보겠다고 하였다. 이튿날부터 나는 이른 아침에 출근하여 밤 늦게까지 힘들어도 응당 겪어야 할 시련이라고 생각하고 겸허히 받아들이어 기술 숙련도를 더욱 제고하면서 차츰 외국에서의 직업적 본능에 적응하게 되었다. 차를 고치러 오는 모든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하여 서비스를 잘 함으로써 최선의 노력으로 자동차 정비일에 열중하였다. 나를 직원으로 받은 그 이후부터 자동차 정비, 판금, 도색 일거리가 적던 데로부터 점차 많이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뉴질랜드에는 중국 본토, 대만, 홍콩, 마카오,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중화 권계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나하고 중국어가 통하기 때문에 편하다고 대거로 자동차 고치러 찾아오면서 수입이 일약 늘어났다. 그후 중국신문에 광고를 내니 중국 유학생들까지 찾아오면서 고객이 더 많아 지었다. 나의 활약으로 오클랜드시 전역에 소문나면서 규모를 늘리어 차 수리하는 서양인 직원도 더 받아들이었다. 처음에는 서양인과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답답할 때가 많았는데 날이감에 따라 영어를 조금씩 터득하면서 의사 소통이 잘되어 서로 손이 잘 맞았다. 그렇게 몇달이 지나니 자동차 수리 공장은 돈벌이가 점점 더 잘 되어서 사장님은 나보고 일등공신이라고 연신 칭찬하면서 얼굴에는 웃음이 떠 날줄을 몰랐다.

정비공장에서 서양인과 함께

<서양인들의 예절문화>

어느 일요일 쉬는 날 아침에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서양인 아줌마 두 분이 마주 걸어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왔을 때 그들은 웃으면서 상냥하게 “하이, 굿 모닝?” 하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 보는 모르는 사이이니 나하고 인사하는 것이 아니겠지 하면서 뒤의 아는 사람과 인사할 거라고 뒤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분명 나하고 인사하는 것이 맞았다. 뒤늦게 알아 차리고 재빨리 안되는 영어 발음으로 “굿 모닝” 하면서 답변 인사하였다. 그렇게 당지 사람들은 면목이 없어도 아침에 만나는 사람과 친절하게 인사하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처음에는 이국에서 낯선 서양인들이 영어로 인사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면서 다시 머리 돌려 그들이 가고 있는 뒤 모습을 바라보면서 새로 느끼게 되었다.

저녁에 친구들 같이 식당에서 식사하고 인행도에서 걸어 가는데 덩치 크고 팔과 얼굴에 문신을 새긴 험상하게 생긴 서양인 두 명이 술에 많이 취해서 걸어오다가 비틀거리더니 우리와 부딪혔다. 우리는 겁이 나서 옆으로 피하는데 그들은 허리를 굽히며 “아임 쏘리” 하면서 사죄하였다. 술에 엄청 취했는데 시비치기 하지 않고 오히려 자아 반성하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뉴질랜드의 당지인들은 예절 바르고 성실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서양인들의 예절문명에 감동되었고 내가 여태껏 너무 한참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그러기에 사람이란 다니면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자기의 부족점을 알고 우수한 문명문화를 받아들이어 배워야 하겠다는 것을 한층 더 깊이 터득하였다.

오클랜드시의 전통적인 주택가

<사투리의 에피소드>

그곳 뉴질랜드에는 중국에서 간 조선족들이 많았는데 나와 가까운 친구들이 자주 찾아와서 자기 속심의 얘기를 나누곤 하였다. 어느날 나의 친구가 우리 공장에 와서 사장님과 대화를 하던 장면이 너무도 코믹하였다. 그 친구는 “사장님, 잘 있었습둥? 와기 우에 거르마의 헤로 댐배가 보이는데 한 대 좀 피우깁소, 그리구 비지깨도 같이 줍소” 하고 말하였다. 사장님은 나보고 “저 아저씨의 말을 한마디도 못 알아듣겠네, 뭐라고 하는지 설명해 주세요”, 나는 웃으면서 통역관인양 자세히 설명했더니 “와, 저분은 연변 사투리가 특별히 심하네요”,

그 친구는 또 습관적으로 “저녁에 몇시에 쌰발 함둥? 요기 옆에 중국식당에 같이 가서 초우채에다가 피주 한잔 합시다”. 사장님은 웃으면서 “같은 연변 사람인데 다른 분들의 말은 쉽게 통하지만 이 아저씨는 뭐라고 말하는지 도무지 한마디도 못 알아듣겠네” 하면서 그냥 마주 보고만 있었다. 우리는 그 친구의 이미 배어진 사투리에 참을 수 없어서 한참 웃었다. 어디에 이런 각본 없는 코미디가 있겠는가, 똑같은 우리민족 말인 데도 외국어처럼 알아듣지를 못하다니. 그런데 그 친구는 내 말이 어떻다고 웃냐며 사투리로 인한 대화소통이 안되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지 못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공부할 때의 어문 표준대로 말을 하여도 괜찮은데 사회 실생활의 방언을 그대로 구사하니 더욱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지역적인 관계로 서울말과 연변 방언의 차이가 많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어려 서부터 나이들 때까지 이미 굳어진 말투이니 어느 순간에 습관적으로 튕겨 나갈지 모른다. 그후부터 나는 그 친구의 말을 계기로 삼아 조심스럽게 사투리를 극복하면서 표준어를 하느라고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가족을 그리는 회포>

남태평양의 오스트레일리아 와 바다를 사이 둔 뉴질랜드는 중국 시간보다 4시간 빠르고 환경오염이 없는 청정한 나라이니까 그런지 보름달이 아주 크고 특별히 환하였다.밤하늘에 밝은 달이 뜨고 뭇별들이 반짝일 때면 북반구의 고향 방향을 향하여 가족을 그리면서 생각에 잠기곤 하였다. 같은 밤하늘 아래에서 같은 달을 바라보고는 있건만 저 멀리 갈라져 있는 가족의 얼굴을 볼 수 없으니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애들은 지금은 얼마나 컸는지” 생각하면서 그리운 가족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전화기를 들곤 하였다. 그 당시에는 화상통화 시스템이 없었기에 목소리를 듣는 자체만이라도 너무 기뻤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저녁이면 조용히 남반구의 밤하늘에 빛나는 남십자성을 바라보며 북반구 북두칠성을 연상하여 무언의 회포로 중얼거리다가 가족의 형상을 뇌리에 떠 올리며 필을 들어 쓴 편지만 그 얼마였던지 헤아릴 수 없었다. 비록 고향을 떠나 잠시 해외에서 홀로 고생하고 있지만 오로지 마누라와 자식을 위하여 상봉의 그날까지 피곤하고 힘들어도 노력하며 더 좋은 성과를 이루기 위해 피땀을 흘려가면서 계속 분투하리라 다짐하기도 하였다.

<비약적으로 변모된 고향 모습>

그런데 사람이 살다 보면 세상일이란 종종 자기가 원하는 계획대로 제대로 안될 때가 있다. 이제는 모든 면에서 적응되었고 안착되어 마음을 먹고 뭔가 한번 좀 성취하려고 설계도를 구상하고 한참 그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뜻하지 않는 사정이 생기어 부득이하게 뉴질랜드와 빠이빠이 하면서 귀국 하여야만 하였다. 어쩔 수없이 고향으로 귀국하여 돌아와서 보니 출국전의 옛 모습이 너무 많이 변하여 알아볼 수없이 놀라보게 발전하였다. 애들은 나의 키보다 훨씬 더 크게 성장했고 마누라는 얼굴에 주름이 늘어 그동안 자식들을 키우느라 고생한 흔적이 보이었다. 시내는 현대적인 고층 아파트가 여기저기 즐비하게 늘어섰고 거리마다 가로수 우거지고 환경 미화가 깨끗하게 잘 되어 시야가 기분 좋게 안겨왔다. 몰라보게 변모된 고향 모습을 바라보면서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것이 진짜로 이럴 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구나 하면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아래 내용을 클릭하시면, 협찬기업 리스트, 협찬개인 리스트, 협력단체 등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주식회사 A-YO상사(Caraz) : 전심혁 사장
2. 전일화부동산협회: 金山張虎 회장 
3. 글로벌일통 주식회사: 권호군 사장
4. 주식회사 에무에이: 마홍철사장
5. 주식회사 아시안익스프레스: 리룡식 사장
6. 주식회사 G&T: 박춘화 사장
7. 주식회사 플램핫: 리승희 사장
8. 쉼터물산: 김정남 사장
9. 주식회사 베스트엔터프라이즈: 리성호 사장
10. 삼구일품김치: 리성 사장
11. 시루바포또 유한회사: 서성일 사장
12. 주식회사JCBC: 엄문철 사장
13. 동화(東和)솔루션엔지니어링구 주식회사: 최장록 사장
14. 마즈도향양양(松戸香羊羊): 권룡산 사장
15. 주식회사 타겐고시스템연구소: 김만철 사장
16. 주식회사 위츠테크놀로지: 전호남 사장
17. 주식회사 HANAWA: 리성룡 사장
18. 주식회사 아후로시: 上田一雄 사장
19. 주식회사 PLZ: 박금화 사장
20. 스튜디오 아키라: 변소화 사장
21. 카바야한방연구소: 로홍매 소장

1. 최우림 박사: 중국농업대학 박사, 전일본중국조선족련합회 부회장
2. 장경호 회장: 신일본미술협회 심사위원, 연변대학일본학우회 회장
3. 김광림 교수: 일본니가타산업대학교 교수, 일본도쿄대학교 박사
4. 리대원 회장: 재일장백산골프우호회 회장
5. 박춘익 사장: 주식회사BTU 사장
6. 리숙 사장: 주식회사미사끼(実咲) 사장
7. 최운학 회장: 일본훈춘동향회 회장
8. 구세국 회장: 재일조선족배구협회 회장
9. 박진우 본부장: 金子自動車 본부장 南越谷점장 국가2급정비사

일본조선족문화교류협회 계좌안내:
銀行名:三菱UFJ銀行 日暮里支店(普) 0554611
名義:一般社団法人 日本朝鮮族経済文化交流協会
【ニホンチヨウセンゾクケイザイブンカコウリユウキヨウカイ】

후원과 협찬에 관한 문의는  일본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 메일주소로 보내주세요.

메일주소:info@jkce.org

후원금과 협찬금은 입금을 확인한 후【一般社団法人 日本朝鮮族経済文化交流協会】명의로 령수증을 발급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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