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创]김의진씨 (조선족기업가) 동경좌담회 필기 / 쉼터소식 2019.03.21

본 내용은 필기형식입니다.

延边大学日本校友会주최로 진행된 이번 활동은 통지가 너무 촉박하게 나가다보니 미처 몰랐거나, 휴일이라서 이미 스케쥴이 잡혀 참가하지 못했던 분들의 아쉬워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고자 쉼터편집이 간단히 좌담회 내용을 정리하였습니다.

내용의 폭이 넓고 깊이가 있어, 가방끈 부족으로 놓쳐버린 중요한 정보들도 있겠지만, 모처럼 시간을 내어 동경 좌담회에 참석해준 김의진씨부부의 재일본 조선족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정보가 쉼터를 통하여 필요로 하는 분들에게 공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쉼터편집

2019년 3월 21일 목요일, 일본에서는 휴일이었는데, 약 60여명의 조선족들이 꽃구경은 가지 않고 동경의 어느 회의실에 모여, 일본여행중 공항에 내리자마자 연변대학일본학우회에 납치되어 곧바로 회의실로 끌려온 온 김의진, 리란 부부를 둘러싸고 조선투자에 관련된 문제, 우리 민족의 자부심과 자녀교육 여성들의 역할 등에 관하여 세시간동안 뜨거운 좌담회를 가졌답니다.

꽃다발을 받고 있는 김의진 리란 부부

2019년에 들어서서 “한국대통령상 수상자” 라는 칭호를 새롭게 수여받은 외에도 김의진씨에게는 많은 칭호가 있었답니다. 예하면 中国亚洲经济发展协会 常务副会长, 中国朝鲜族企业家协会会长团 执行会长… 너무 많아서 일일이 기록하면 읽는 분들이 잠들것 같아서 생략하고, 좌담회에서 우리 일본에 있는 조선족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내용에 초점을 맞추어 적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주제를 정하고 진행한 강연회가 아니라, 특정 주제 없이 청중들의 관심초점에 맞춘 좌담회 형식이었기에 시간분배도 김진의씨와 리란녀사에게 골고루 한시간반씩 돌렸고, 중간에 약 10분정도 넣어서 저녁 6시넘어 좌담회를 마쳤습니다.

우정 안배한것은 아니었겠지만, 절묘하게도 김의진씨는 기업경영 및 조선투자의 전망에 대한 내용이, 리란씨는 조선족여성들의 사회에 대한 역할, 차세대 및 자녀교육에 대한 경험과 지혜 등이어서, 그날 내용이 사업과 가정 모든 면을 포함할 수 있어서 참석했던 여성분들에게도 아주 좋은 시간이 되었던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느낌이라면, 강좌내용보다는 질문응답이 우리들의 실제적인 삶과 관련된 내용이 많아서 더 재미있었던것 같았습니다.

그럼 아래에 필기를 공유합니다. 한쪽으로 들으면서 정리한거라서 일부 중요한 메세지를 놓쳤을 수도 있겠지만, 다소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내용이 길기 때문에 짤막짤막 단락을 나누었는데 전차안에서 토막시간이 날 때 조금씩 읽어보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김의진씨의 좌담시간

김의진 조선족기업가

발표한 내용

금방 따끈따끈하게 대통령상 받은 후니깐 좀 추이뉴할줄로 알았는데, 좌담시간에 대통령상에 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띠뚀低调해도 너무 띠뚀라서 놀랐습니다. 강의 마치고 한 친구가 위챗에서 하는 말이, “실력이 있는 사람은 진짜 띠뚀하면서 여유가 있는것 같다” 며 감탄을 금치 않았습니다.

내용은 포도넝쿨에 달린 포도알처럼 많지만 그것을 고도로 농축시키고 또 농축시켜 한병의 포도주로 요약해보면, 대략 아래와 같습니다.

41년째 북경에서 생활하면서, 나이가 들면서 점점 자신의 민족에 대한 정체성, 그리고 조선적문화에 대한 자신감을 되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중국도 10년은 전후로 그전에는 서로 뿔뿔이 흩어져서 서로 모르면서 살아가다가, 최근에는 인터넷으로 서로 연결이 되면서 오프라인으로도 모임이 활발해진것 같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정부에서 너그러운 민족정책이 있긴 하지만, 외국에서처럼 자유롭게 허가를 맡을 수 있는 현실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국의 조선족 모임을 보면 정부에 허가를 맡은 것은 경제교류발전에 관련된 협회 몇개 뿐이고, 등록되지 않은 모임이 오히려 더 많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조선족 골프모임만 해도 50개 정도는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업가관련 협회가 주축이 되어 있고, 옥타도 중국에서 많이 활약하고 있으며, 그기에 로인협회 등 있어, 거의 모든 큰 도시에는 공식으로 허가받은 조선족 협회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합니다. 외지에 나간 조선족들 중에 광동의 조선족들이 가장 규모도 크고 활발한데, 예하면 운동대회를 3일간 연속개최한다거나, 호텔을 아예 뽀우(包)해서 중간에 문예경연대회도 넣고 광장무도 하고 장난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광동현상이라고 칭하고 싶은데, 어찌보면 고향을 멀리 떠나면 멀수록 뭉치는 힘이 강해지는것 같다고 합니다. 흑룡강 연변 이렇게 고향을 따지지 않고 그냥 같이 똘똘 뭉쳐서 행사들을 하고 있는 광동성 조선족연합회가 그래서 진짜 멋있다고 합니다.

일본의 조선족에 관해서는 위챗을 통하여 가끔씩 접하고 있는데, 더구나 이번 기회에 우연하게 초청까지 받아 일본의 조선족들과 대면할 수 있는데 대하여 아주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가 많이 관심을 퍼붓고 있는 조선의 발전과 투자에 관해서는, 본인은 전문가가 아니지만 잘 알고 있는 이춘일이라는(필기하다보니 성함이 정확했는지 모르겠음, 혹 틀렸다면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전문가가 계셔서 연대출신이고 또 평양에서 박사 박사후까지 공부하고 있어, 그분과 친하기에 통화하여 요해한 정보를 우리한데 공유한다고 합니다.

조선은 지금 우리가 짐작하고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 많은 개방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에도 옛날에는 모든 노동성과를 나라에 바쳐야했기에 사람들이 의욕이 없었던 시절이 있지만, 조선의 경우는 지금 30%는 나라에, 30%는 집체에 바치고, 나머지 40%는 자기에게 남길수 있어 사람들의 노동과 재부에 대한 의욕이 강해졌으며 자그마한 비즈니스도 허용되고 활성화되어 유통이 잘 되어 있다고 합니다. 김일성시대에는 중공업위주, 김정일시대에는 선군정치, 그리고 지금 김정은시대에는 시장화 경공업 과학기술 IT등이 중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적으로 보았을 때 2018년에는 한국과의 관계 개선, 2019년은 중국과의 관계 강화, 그리고 2019년은 조선과 중국수교 70주년이기도 하기에 더 많은 교류와 협력이 이루어질것으로 보인다고 하며, 일본쪽과는 2020년에 올림픽도 있고 또 조총련을 통하여 많은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을가 기대하는 학자들도 많다고 합니다.

앞으로 조선이 개방을 하게 되면, 같은 문화와 같은 언어, 그리고 조선과 같은 시절을 겪어왔고 또 비즈니스의 성장을 경험해온 조선족들에게는 앞으로 3년 5년이 절호의 기회로 될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조선족을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될것이구요.

조총련은 일본에 정착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조선이 일본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일본의 기술, 일본의 자본이기 때문에, 일본에 있는 조선족들에게도 이것은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중국대사관에서 누가 하는 말이, 조선은 부담이 큰 대신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고 했답니다. 때문에 조선은 지금부터라도 발 한쪽을 담가놓는게 좋을거라고 합니다. 예하면 중국에서는 조선족들이 관련사업을 많이 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하면 택시기업이라든가 최근에도 무슨 계약을 했다고 하는데, 일본에 있는 조선족들은 조총련 관계자분들과 잘 연락해서 미리 준비해두는것도 좋을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좌담회 서두에도 발표한 내용이 있는데, 보충하면, 연변대학과의 인연에 대해 설명할 때, 연변대학 의학원 출신을 포함해서 북경에서 조선족 의학 석사 박사들 약 250명이상 모아서 조선족들의 학술연구회를 만든 이야기를 하면서, 중국사회는 능력만으로 되는게 아니라 파이마피도 알아야 되고 부정부패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요해를 해야 하는데, 대부분 조선족들은 너무 솔직해서 정치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도 했고, 다행히도 의사는 정치보다는 자신의 실력으로 위치를 찾을 수 있는 분야기에 이런 부분에서 조선족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에 좋다는 이야기도 했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연변대학은 연변대학 졸업생들의 연변대학도 아니고, 연변에 있는 조선족들의 연변대학도 아닌, 전체 국내 조선족들의 연변대학이라고 말하여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리고 참가자들의 관심사에 더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 바로 질문응답시간으로 들어갔습니다.

질문 1 : 일본에 관한 소식은 어떤 경로로 접수하고 있는지 ?

질문: 저는 룡정고중학우회에서 왔습니다. 선생님은 세계의 조선족 소식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고 일본도 잘 알고 계시는것 같은데 이런 정보들은 생활속에서 어떤 경로로 접수하고 계시나요?

답: 경로에 대해서는 잘은 모르겠고 그냥 줏어들은 것이 많습니다. 한때 일본에 오고 싶어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워이씬에서 일본에 관한 소식이 돌면 조금 더 관심을 들여서 본것 같습니다. 또한 각 지역 단체장들과 많이 친하다보니 만나서 정보교류를 하면서 많이 소식을 접하고 있습니다.

질문 2: 조선족 젊은 기업가 양성하는데 관한 좋은 생각은 없는지?

질문: 공무원으로 계시다가 여행업으로 나아가서 중한교류를 통해 사업을 많이 전개하셔서 현재는 사업으로 크게 성공했기에 여러가지 좋은 일도 할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혹시 현재 창업붐 벤쳐붐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런 기업가들 양성에 대해서 좋은 생각이 있으면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답: 북경의 경우는, 창업 1세들은 원시축적 혹은 옛날에 짠지장사 등으로 시작한 분들이 많은데, 요즘은 많이 바뀌어서 30대후반이 엄청 활약하고 있으며, 특히 고학력 좋은 대학 나온 사람들이 힘을 쓰고 있습니다. 중국은 인맥이 가장 중요한 곳이니깐, 예하면 인민대학 출신들은 인맥을 아주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기에 圈子文化가 활성되어 있습니다. 북경의 30대 40대중 한부류는 중국주류사회의 사람들이 잘 나가고 있고, 다른 한부류는 삼성이나 세계적으로 큰 기업에서 배우고 나온 분들이 잘 나가고 있는 편입니다.

조선족들의 기업중에 상장기업이 몇개 있는데, 보게 되면 사업이 커서 그렇게 되는게 아니라, MBA랑 다니면서 圈子가 생겨서 그기에서 배우면서 그렇게 달성을 한 경우가 많습니다. 젊은 분들은 중국의 방식에서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 MBA를 마치고 나온 친구들과 이야기 해 보면 벌써 이야기도 다르고 노는것도 다릅니다. MBA는 공부를 배우러 가는곳이 아니라, 인맥을 형성하러 가는 것입니다. 자본 아이팀등은 일본에도 마찬가지로 많겠지만, 중국은 더 격렬하니깐 아마 일본에 있는 분들도 장래의 발전을 위해서는 필요할것입니다.

질문 3: 조선반도의 발전 기회를 어떻게 잡을것인가

질문: 조선에 한발 담구는게 좋다고 하셨는데, 예를 들어 일본에 있는 젊은 청년들은 정보도 적고한데, 3년 5년을 대비해서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정보를 수집하고 어떻게 기회를 잡으면 좋을지에 대해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답: 옛날에는 조선족들이 한국과 무역에서 통역이랑 하면서 다리의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 성공한 조선족의 70%는 공장에서 통역이랑 하면서 배워서 독립했거나, 원시자본의 축적을 통해서 사업을 시작한 부분이 많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가 아는 친구도 옛날 옷가게 해오다가, 아이엠에푸 때 한국의 기업을 사고 지금 크게 발전한 사람이 있습니다.

일본은 선입견으로 인하여 조선과 거리감이 있는것 같은데, 그러기 때문에 중간에 다리 역할을 담당 함으로서 예하면 龍谷大学 조선족학자 이상철씨와 같은 조선을 잘 아는 전문가가 활약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선은 한번 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연변대학 일본학우회도 지금부터라도 조총련과 교류하여 뭔가 신호를 보낼 필요가 있지 않을가 합니다. 중국의 경우는 중국사람들이 조선과 거래를 하기 위하여 조선족을 많이 찾아옵니다. 앞으로 일본도 그런 시기가 올 수 있으니 연변대학이 이런 역할을 잘 닦아놓으면 조선족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것 같습니다.

이렇게 조선족이 중시받는 이유는, 조선에 원어국(? 발음으로 표기했는데 맞는지 모르겠음)라고 있는데 우리 조선족이 가면 국장이 나와서 맞이하고 그럽니다. 중국사람(한족)들은 조선에 가도 높은 위치의 조선사람을 만나기 힘듭니다. 하지만 우리 조선족은 가능합니다.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교류를 많이 하여 얼굴도장 많이 찍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질문 4: 조선반도의 부동산투자 적절한 시기에 관해서

질문: 중국은 개혁개방 때 부동산 투자를 하여 부자가 된 사람들이 많은데, 조선은 언제쯤 부동산시장을 개방할것이라고 생각됩니까?

답: 지금 이미 조선에 땅 산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점은 아직 법적으로 보장이 없다는 점입니다. 하루아침에 부동산 정책이 바뀔수도 있습니다.

지역적으로 볼 때, 법은 나와있어서 라진은 집 산 사람이 많지만, 기타 지역은 아직 보장제도가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하루아침에 쫓겨나는 분들도 있으므로, 언젠가는 되겠지만 아직은 부동산투자에 적절한 시기는 아닌것 같습니다.

그대신 캄보디아 라든가, 이런쪽에 부동산 투자해서 돈 번 사람들도 많으므로, 부동산투자를 원한다면 缅甸이나 老挝등 주변 다른 국가에 대해서 요해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것 같습니다.

질문 5: 조선은 전자메일이 되는지

질문: 조선은 전자메일이 되나요?

답: 되기는 되는데 아무나 되는게 아니고, 팩스를 많이 씁니다. 구체적인것은 이춘일 전문가가 더 잘 아는데 오늘은 그냥 그분한데서 들은 이야기를 전달한것 뿐이라서 구체적인것은 그분과 요해해 보는것도 좋을것입니다.

질문 6: 조선족사학회에 관해서

질문: 조선족문화 역사발전학술촉진회(? 명칭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에 이사로 계시는 것 같은데 어떤 내용들을 다루는지 좀 들려주실수 있나요?

답: 중국에 문서화로 되어 있지 않은 규칙이 있습니다. 예하면 재대군인들이 조직을 못 만들구요, 소수민족도 조직을 못 만듭니다. 그때 쏘련이 해체되는것을 보면서 이런 조직들이 불안정요소로 판정되었기에 그럴수 있는것 같습니다. 원래 사학회는 연변대학에 본부를 두고 운영해왔는데, 후에 예산이 나오지 않아 운영이 어렵다가 박미복교수 그리고 조남기 이득수 등 역사학자들과 같이 학회를 넘겨받아서, 돈을 내서 항일역사 연구도 하고 항일열사들의 책도 내고 역사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문화쪽으로도 연구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기업가들은 그냥 이름만 걸고, 주요연구와 발표는 학자들이 하고 기업인은 자금을 제공하는 식으로 합작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북경조선족우리마을학교가 있는데 정음학교를 사학회 아래로 걸어놓고 있고, 또 중국 전체지역의 우리말교육학교본부를 두어서 각 지역의 우리말학교와 서로 교류도 하고 교육쪽으로도 힘을 쓰고 있습니다.

질문 7: 주식투자에 관해서

질문: 중국에서는 지금 부동산이 움직이지 못하는데, 요즘 보니깐 주식이 1000点에서 3000点으로 올랐는데 지금부터 10년간 주식시장 전망은 어떤지 물어봐도 될가요?

답: 솔직히 주식은 잘 모릅니다. 부동산 관련 控股公司에 관해서 이야기 공유하겠습니다.

나이들고 보니깐 고국에 살고 싶은 마음도 있고 해서, 경제단체협회의 부회장을 맡으면서 제주도에 골프하러 많이 다녔었는데, 7년전에 제주도 도지사가 제주도 발전하자면 당시 인구 50만을 100만까지 늘구어야 한다고 그러자면 해외 자본유치를 해야 한다고 해서, 북경에 두번 세번 찾아와서 설득하여 控股公司를 만들고 제주도투자를 한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조선족이어야 하고, 여유자금을 사용해야 하며(은행 대출 없이), 인품이랑 보면서 선발하자 해서 그때 연길에서 심천까지 조선족중에 약 20명을 모아서 여유자금으로 투자회사를 만들었습니다. 투자회사 만들어 등록을 하고 제주도에 20만평방메터를 사서 별장도 140개정도 지었는데, 그런데 중간에 한국의 정권이 바뀌면서 발전보다는 보전과 행복지수가 더 중요하다 해서 정책을 바꾸는 바람에 그때 투자했던 중국자본들이 지금 엄청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때 투자했던 사람중에 유명한 온주상인들도 있었는데 전체 침몰했습니다. 예하면 할빈에 유명한 추림회사를 산 온주상인 회장이 있었는데, 제주도에 갔다가 8000만불 투자하고 지금은 跑路(도망갔음)해서 血本无归한 실례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경험하면서 보니깐, 시작하면서 시간도 많이 허비되고 피해도 많이 입었습니다.

그래서 부동산개발은 지금도 진행중인데 아직 성공 실패 논할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것은, 네트웍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경제협회도 있고 하니깐 서로간 신뢰가 쌓여서 전화한통으로 50만불 100만불 투자를 했고, 그중에는 부동산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있고, 경영관리기술가진 사람도 있고, 인맥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고객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해서 자원을 공유하면서 진행할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투자금액은 한사람이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게 최고 150만불로 제한해 놓았고, 여유자금으로 하니깐 너무 조급해할 필요도 없고, 모델자체는 아주 좋았던것 같습니다.

일본같은 경우도, 우리 조선족이 특별히 쉽고 소통이 되고, 또 쉽게 믿어 깨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자원을 공유하고 각자 특색을 살려 합작하는 방식은 어찌보면 아주 좋은 모델인것은 틀림없는것 같습니다. 앞으로 시간되면 제주도에 답사하러 와 보세요.

여기서 일단 10분 마치고 다음순서로 리란 녀사의 좌담시간으로 들어갔습니다.

리란 녀사의 좌담시간

리란 녀사

발표한 내용

리란 녀사는 실제나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파릇파릇한 모습으로 나와서, 오행시로 서두를 뗐답니다.

이틀전 애심여성회 이사회를 했는데 그때도 오행시를 만들었다면서, “가슴뛰는 삶” 으로 오늘 모인 일본에 있는 조선족들을 위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가: 가자 그곳으로 그리운 얼굴들이 있는 그 곳으로
슴: 숨(슴)가쁘게 얼싸안고 회포를 나누어보자
뛰: 뛰는자 나는자 능력있는 조선족 엘리트들이 다 모였있는
는: 름(는)름한 신사들 우아한 숙년들 … (요부분 필기 따라가지 못해서 빠졌음 … )
삶: 삶을 위해 눈속에서 피어난 초봄의 진달래 ! (여기 부분도 일부 빠진것 같은데 기억안남)

오행시에 좌담회실에서는 박수와 환호소리가 터져나왔답니다.

남편 잘 만나서 이렇게 일본에서 조선족들도 만나게 되어 너무나 좋다고 말문을 열면서, 백년전 일제한데 빼앗긴 나라와 땅을 찾기 위해 독립을 외치면서 일어났던 우리민족의 독립활동의 발원지가 바로 일본이었다면서, 그래서 이렇게 3월에 동경에서 만나는 것이 너무나 의미가 있고 감회가 깊다고 말했습니다.

룡정출신이라고 룡정자랑 몇마디 했구요 (예하면 최서해씨, 윤동주씨, 항공학계의 강량산 원사, 백신 전문가 김영일씨, 한라경 화가 등등 그리고 자연으로는 해란강 일송정) , 그리고 문화대혁명전에 전국우수교원이었던 부모님들의 이야기도 나누면서, 이때까지 자신을 지탱해준 것이 바로 민족자부심이라고 주제를 밝혔습니다.

조선족들이 더 낳은 삶을 위해 한국으로 일본으로 미국으로 발전되어 나갔지만, 자기의 뿌리를 잊어서는 안된다는 점과, 또 지금의 젊은 세대는 전 세계로 나아가면서 예하면 “조선족”, 그리고 “중국공민”, 또 해외에 나가서 정착하였을 경우 “글로벌” 등 세가지 정채성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연히 본인의 경력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는데, 2007년 50살을 맞이하면서 국가민족번역국에서 30년의 공력이 쌓이면서 은퇴생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때 애심협회의 회장이 협회를 이끌어가면서 여러가지로 어려움을 느끼고 도와줄 사람을 찾다가 리란녀사를 찾아오게 되었으며, 그때 리란녀사는 이미 애심장학회를 몇년 해왔고 연변일보사 북경지사를 맡고 있었지만, 쉽지 않게 시간을 잡아 만났는데 그것이 인연이 되어 애심녀성네트워크가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름을 지을 때도, 당시 정책상 조선족여성이라는 이름 달기에는 “조선족”이라는 단어가 허가 받기 어렵고, 또 흑룡강이나 연변 지역에 대한 제한을 없애기 위해서는 지역이름을 넣지 않는게 좋고, 부녀라하면 독신 여자들이랑 참가하기 어려우니깐 “부녀”란 이름도 넣지 않고, “협회”라는 이름은 등록이 안되고 해서 “네트워크”라는 단어가 좋다 해서, 그래서 만들어진 이름이 “애심녀성네트워크”가 되었다고 합니다.

만들어서 운영하다보니깐 정체서이 너무나 모호해서 모든것은 한국식으로 따라하고 있고, 정책도 없고 해서 우선은 三观교육부터 필요하지 않냐 싶어서 포럼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한것이 한국말만 하지 말고 조선말도 사용하고, 여성과 엄마들이 우리말을 사랑하고 우리 문화를 사랑하는, 예를 들어 집에서 엄마가 고추장 좋아하면 애들도 따라가듯이, 우리 음식도 사랑하는 활동을 추진했답니다.

그래서 네트워크라는 단어가 아직 익숙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또 워크샵을 만들어서 조선족역사 특강도 하고, 민족대학 언어학자 서영섭(성함이 맞는지 모름) 교수를 요청해서 아름다운 우리말 교육도 하고, 또 흑룡강 통화에서 교장선생을 모셔 특강도 하고 교육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북경 왕징에서 50명이상 모이면 공안국에 상세한 보고를 해야 했답니다. 그렇게 7, 8년은 단련을 받았는데 한번은 우리말 조금 알아들을 수 있는 공안국 사람을 모셔서 특강을 듣게 했는데 그랬더니 이제 조선족과 한국인이 뭐가 다른지 알만했다고 하더랍니다.

그때 워크샵하면서 반응이 너무 좋아서 후에 흑룡강 료녕 등 지역의 조선족단체와 연락하여 조선족대표들을 보내주세요 해서 기타지역의 분들을 북경에 모셔서 북경에서 워크샵을 연속 세번 했습니다. 3번을 마치고 이제는 올림픽처럼 돌리면서 하자 해서, 그담에는 청도 심천 상해 장춘 연태 위해 그리고 이번에는 연길에서 11기 워크숍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러면서 우리의 취지가 뭐냐라는 것이 점점 선명해졌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 민족의 문화를 살려가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산재지구(散在地区 조선족들이 흩어져 살고 있는 곳)의 조선족녀성들이 밀어버릴수 없는 사명이다, 이런것이었다고 합니다. 민족문화의 전승(传承) , 차세대 리더의 양성, 회원간의 학습과 교류를 통한 동반성장, 여성의 사회에 대한 공헌, 그래서 이런 점들이 애심여성네트워크의 취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복입기 활동도 추진하였는데, 포럼 개막식은 무조건 한복을 입고 했는데, 상해에서 포럼 할 때 한국 총영사가 왔는데, 그때 300여명이 한복을 떨쳐입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하더랍니다. 장춘에서는 500명 참석자였는데 손님 빼고 400여명이 한복을 입었다고 합니다. 첨에는 모두 옷을 빌려 입고 그랬는데, 보니깐 다른 분들이 멋있는 한복 입고 하니깐 나도 한복 하나 사야겠다 그래서 또 한복 장사하는 분들도 잘 되고, 애들 활동때도 애들한데 한복 입히고 … 그래서 한복에 대한 문화가 활성화 되었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개막식에서는 지역마다 프로를 내놓게 했는데, 밤새 와서 부채춤 무용 장단 연습하고 해서 해마다 수준이 늘고 있으며, 또 전국 각 지역에서 몇년에 한번씩 조선족운동회나 문예대회가 있는데, 그때 당지 여성분들이 나가서 무용도 하고 절목도 내놓고 하니깐 당지 한족들한데 우리 조선족들의 단합된 민족모습도 보여주게 되고, 그래서 보니깐 조선족여성들의 역할이 가정에서 애 키우고 남편 지지하는 것도 있겠지만 더 사회로 나아가서 각 지역의 민족사회의 단합을 촉진시키는 등 역할도 하고 있어, 지금 보면 애심여성네트워크 소속의 각 지역단체들이 진짜 잘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청중들 뜨거운 박수)

지금 일본을 보니깐 여기도 이제는 때가 된것 같다고 합니다. 70후 80후 엄마들이 한창 역할을 할 때니깐, 보니깐 샘물학교도 아주 잘 꾸려나가고 있고, 오사카에 여성단체도 새롭게 새워졌고, 그리고 오늘 참가한 박춘화씨도 3년전에 대련에서 애심녀성네트워크일로 합작한 적이 있고 보니깐 지금 일본문화교류협회에서 문화에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고, 그래서 어쨌든 중국에서는 어렵지만 여성들의 포럼을 매년 계속하려고 하고 있는데, 그때 일본에서도 대표단을 만들어 참가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활동을 하자면 돈이 필요한데 매번 남자들보고 돈내라 하기도 말꺼내기 어려워서, 실력있는 단체의 후원을 받고 2013년 우리말수기 쓰기 활동을 했는데 투고도 받고 평심원도 찾아놓고 했는데 도중에 단체가 후원이 어려워졌다 해서 끊어져서 급히 아는 조문학부 졸업하여 사업하고 있는 김송월(? 필기라서 성함이 맞는지 모르겠음)후배를 찾아서 협찬을 받았는데 첨에는 3만원(인민페)로 하여 “애심여성컵” 제1기를 마쳤는데 한번 하고 나니깐 돈이 없어져서 더이상 견지가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2015년 상해에서 여성포럼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임기를 넘기면서 그때 개인적으로 3만원(인민페)를 내놓고 기금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2만원(인민페) 내면 공동발기인으로, 5000원이면 이사로, 비용은 성의껏 낼수 있게끔 해서 위챗으로 선전하고 했는데 두달도 안되어서 40몇만(인민페) 모였는데, 그것으로 지금 줄곳 진행해왔습니다. 금년에는 제5회로 이어졌는데, 제3회까지 나온 우수작품은 작년에 민족출판사에서 개혁개방에 관련된 조선족들의 체험들을 채방하겠다는 것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중 우리의 생활수기도 살아있는 체험들이고 인쇄자금도 우리가 가지고 있으니깐 그것으로 설득해서 “꿈이 있는 자는 만난다”라는 제목으로 40몇명의 수필집이 민족출판사에 사상 첨으로 중국정식등록번호를 가지고 정식 출판이 되었다고 합니다.

금년에도 제5회 우리말수기 쓰기 활동을 하여 투고를 모집하고 있는데 너무나 좋은 글들이 많아서 평심위원들이 고민이 장난이 아니랍니다. 일본에서도 많이 참가했으면 좋겠고, 한사람 힘은 약하지만 많은 분들의 힘을 합치면 수필뿐만 아니라 더 큰 일들도 할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애심장학회에 관한 이야기도 했는데, 첨에는 대한민국 중국대사관 교육관이 만나자고 했답니다. 그때 리란녀사는 한가지 고민이 있었는데, 중국에서 선생님들을 볼 때 물리나 수학 가르치는 분들은 중국학교에 가도 계속 가르칠수 있으니깐 승진하기도 좋고 그런데, 조선어를 배워주는 선생들은 조선어 자체가 이 환경속에서 중시받지 못하니깐 조선족학교 외에는 다른 학교에 갈 수가 없어서 가장 불쌍해 보여 어떻게 한국으로 연수랑 보낼 수 없을가 했는데 마침 기회가 되니깐 그래서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육관 만났는데 그때 하는 이야기가 중국동포재단에서 중국에 있는 조선족대학생들에게 장학금 주고자 하는데 아는거는 청화대학 민족대학 북경대학 학생들밖에 없으니깐 방법이 없느냐 하는데, 솔직히 북경에 다른 대학에도 조선족들이 많고 그리고 그때 마침 인터넷 붐을 타고 KSC학생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도 활성화되고 있을 때라서 서로 연결을 해서 북경에 있는 각 학교의 조선족들에게 연락해서 팩스와 편지로 모집하여 학생 40명을 선발하여 제출했다고 합니다. 그중에 25명은 통과되고 15명은 탈락되기도 했지만, 탈락한 분들은 일대일 장학금으로 보충하는 형식으로 하여, 그렇게 일단 시작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계속하다보니 후에 후원받은 학생들에게 확인해보니깐 통과된 25명은 매달 꼬박꼬박 40달러가 나오는데 나머지 일대일장학으로 보충한 학생들한데는 한번만 나오고 더이상 장학금이 나오지 않는다던가 등 문제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 조선족들도 먹고살기 괜찮아졌는데 너무 한국에만 의지해서는 안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우리 힘으로 해야겠다 해서 여러 사람들과 상담이랑 한 결과 KSC행사를 할 때부터 모금을 시작해서 지금 까지 쭉 발전해왔는데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400여명의 학생들을 지원해왔답니다. 그동안 수많은 조선족 분들의 후원속에 진행이 되어 왔다고 합니다.

그때까지는 대부분 장학금이나 백일장 문학응모 등은 한국이나 미국에서 지원받는 것이 일반이었는데, 이제는 그것을 우리 조선족들의 힘을 합쳐 기부의 문화 나눔의 문화를 살림으로서 어느정도 우리 내부에서도 담당을 할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면 우리 산재지구(散在地区)에 조선족들은 뭉쳐야 된다, 여성들이 뭉쳐야 하고, 여성단체와 남성단체가 뭉쳐야 하고, 지역과 지역이 뭉쳐야 하는것 같답니다. 40년간 북경에서 살아왔는데 요즘에 들어서서 인터넷으로 연결되기 쉬워지고 해서 보니깐 뭉쳐야 단체가 활약하고, 조선족 젊은이들이 활약하고, 우리가 정체성을 확실히 하고 뭉쳐서 힘과 지혜와 능력과 자원을 합쳐야, 개인발전에도 유리하고, 동네발전에도 유리하고, 울타리 발전에도 유리하고, 민족에도 유리하고 오래오래 우리 조선족이라는 자부심으로 갈 수 있다고 합니다.

25년동안 중국의 两会번역을 해왔는데, 2000년때 人大 7계 8계때는 조선족 대표가 33명이 있었는데, 지금은 20명도 안된다고 합니다. 뭘 설명하느냐면, 옛날에는 항일전쟁이요 해방전쟁 등에서 공로를 세워 인정을 받았지만, 지금은 한국과 거래가 많아져 정체성도 흔들리고 우리도 정치에 관심이 적어지고 조선족마을에 조선족이 없어 간부선거를 하자고 해도 사람이 없고… 어찌보면 우리에게는 슬편 현실이기도 하지만, 그렇지만 또 우리가 글로벌시대에 다른 지역에 가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발전함으로서 더 큰 발전을 하고 있다고 볼수도 있는데, 한가지 부탁이라면 지금의 젊은이들이 정치 할수 있는 분들은 정치하고, 특히 일본에서도 우리 조선족이 국회의원이 될수 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래야 우리 조선족이 话语权(발언권)이 있으니깐요, 당지의 법 제정에도 참여할수 있고 그래야 우리 민족이 진짜 강해질수 있답니다.

그래서 우리가 북경에서 살든, 서울에서 살든, 뉴욕에서 살든, 동경에서 살든, 우리가 우리 조선민족은 하나다 라는 것을 명심하고, 지금 인터넷시대 얼마나 좋습니까 위챗으로 금방금방 통하고 하니깐, 서로 뭉쳐서 힘 합쳐서 서로 응원하면서 잘 살아가도록 합시다. 감사합니다. (청중들 뜨거운 박수)

이상으로 강의를 마치고 질문응답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질문 1: 아이의 정체성 인식에 관하여

질문: 일본에서 애를 키웠는데 지금 15살인데 정체성문제로 고민이 많습니다. 옛날에는 위챗도 없고 커뮤니티도 없고 해서 혼자서 고민을 많이 한적도 있는데, 애한데는 일본어를 제1언어로, 다른언어를 두번째 언어로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년전부터는 유학을 고려해 오다가 이번달에 대만으로 홈스테이로 보내게 됬습니다. 애가 어느 민족을 좋아해야 하나, 괜히 민족속성이 복잡한 엄마를 가져서 내가 한국 일본 중국… 어느걸 골라야 하나 방황하는 것 같습니다. 일단 애한데는, 일본에 살고 있는데 대해 인정해라고 이야기는 했는데, 애가 소학교까지는 자기가 일본인이라고 하던게, 중학생때부터는 자기의 정체성에 대해 느끼는 것 같습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중국에서 친구집에도 같이 두주 살아보고 하며 체험한것이 아마 영향을 준것 같기도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애를 교육하는게 좋을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답: 그런 고민은 누구나 다 겪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저의 아들이 상해여자를 데려오겠다 할 때 1년을 반대했습니다. 지금은 결혼하고 애도 있어서, 손녀 볼 때마다 아이랑이라든가 산토끼야 토끼야 등도 배워주려고 노력은 하고 있는데 쉽게 바뀐것은 없습니다. 애한데 꼭 이렇게 해야 된다 저렇게 해야 된다하면 실패하더라구요. 그래서 좋기는 은근히 그런쪽으로 유도하든지 예하면 여행을 통해서 한국에 가서 조선족 본다든지 고향에 간다든지, 적어도 애한데 그런 문화를 접촉할 수 있는 체험할 수 있는 조건은 마련해주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우리가 민족의 발전을 위한다는 그런 높이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한가지 언어를 알고 한가지 문화를 체험함으로서 애들한데 그만한 기회가 더 생기는 것이니깐요.

옛날 어느 영화에서 보았던지 아주 강렬하게 인상이 남는 장면이 있었는데, 유태인인데 이 사람이 독일사람처럼 살고 유태말을 모르고 했는데 어느날 소련군이 들어와서 독일사람을 체포하려고 하는데 이 사람이 유태말은 모르지만 갑자기 어릴때 불렀던 유태노래가 생각나서 막 유태인노래를 불렀더니 아 유태인이구나 하고 죽을번 했다가 살아난 장면이었습니다.

애들한데도 아직은 이해가 안되더라도 우리 민족의 체험을 시킴으로서, 나중에 그 애가 아 그래도 내가 우리 민족의 언어를 알아야겠다 라고 했을 때, 쉽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가 싶습니다. 중국에도 재미있는 사례가 있는데, 원래 우리말에 대해 전혀 모르던 애를 가지고 있던 분이었는데, 애가 재외동포재단의 활동을 참가하며 여러가지 수상을 하더니만, 어느날 글쎄 엄마가 조선말로 뭘 썻는지 알고 싶다며 조선말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그랬더니 시어머니도 나도 공부하겠다 이렇게 해서 그집에는 3대가 같이 우리말 쓰기에 도전하게 되었다는 사례가 있습니다.

이런 고민은 누구나 다 있는데, 부모로서 애들에게 선택은 나중에 자기절로 하도록 하겠지만, 알게는 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질문 2: 글짓기 전국대회에 투고할 수 있는 경로는?

질문: (문화협회문학원 박춘화씨의 질문)지금 일본에서 “당신의 소중한 이야기 들려주세요” 라는 활동을 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많이 연락을 해서 적어도 두편은 쓰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편은 우리 문화협회에 투고, 다른 한편은 북경 애심생활수기에 투고하도록 선전하여, 9월달에 있게 되는 전국대회에 참가하게 하고 싶은데 … 약간 고민이 글쓰는 분들에게도 부담이 되니깐 두편으로 해야 되나 아니면 진짜 한편을 정승들여 잘 써서 우리가 추천을 해서 중국대회에도 참가하는게 좋은지, 저희들도 최대한도로 투고해주신분들에게 기회를 제공해드리고 싶고 해서 상담하는바 입니다.

답: 지금 애심생활수기는 이미 연변녀성잡지와 협약하여, 좋은 글들은 지속적으로 잡지에 발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건의하건데 투고는 그때까지 몰아서 진행하지 말고, 미리미리 작성해서 투고하면 좋고, 그리고 투고방식에 관해서는 구체적인 것은 방법론에 속하는것이니깐 이제 잡지사 담당자랑 같이 상의해서 진행하면 좋을것 같습니다.

질문 3: 직장에서의 정체성에 관련된 고민

질문: 정체성에 관하여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질문하고 싶습니다. 지금은 영주권 가지고 있고 남편이 일본인인데, 저는 현재 800명 넘는 일본회사에서 유일하게 한국말 할 수 있는 직장인으로, 한국하고 중국에 의약품을 수출하는 업계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조선족이 뭔지 이해를 못해서 korean-chinese라고 설명을 하는데 잘 이해되는것 같지는 않고, 한국 출장가면 한국에서는 또 저는 자기편이라고 해서 가깝게 끌려고 하고, 저는 일본회사 소속이니깐 그래도 일본회사의 입장을 지켜야 하고, 그래서 정체성에 관해서 많은 고민을 느끼고 갈등을 느낄 때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답: 글쎄 그게 우리 공동의 고민이죠. 갈등이 많죠… 그래 어떻게 하겠어요. (청중들 폭소 … ) 저도 한때 한중무역을 체험해보면 한국사람하고 같이 있으면 한국사람들이 자기 편 안한다고 난리치고, 중국사람들은 또 자기편 아니라고 난리치고, 그런데 비즈니스인만큼 계약에 충실하고 비즈니스에서는 비즈니스를 우선으로 해야 하지 않을가싶은데, 그걸 철저하게 지키는게 좋을것 같네요.

질문 4: 여성으로서 사업과 가정의 충돌에 대한 해결책

질문: 요즘은 여성들도 사업하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는데, 리란선생님도 보니깐 일도 해야 하고, 육아 가정 시부모님 그리고 사회활동 등 하자니 남성들보다 3배정도는 더 힘이 드는것 같은데, 저도 요즘 사회활동 가족 돌보자니깐 참으로 쉽지가 않습니다. 하다보면 충돌도 많은데, 이럴 때 어떻게 해야 좋은지 어떤 시선으로 처리하면 좋을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답: 결혼을 선택하고 아이를 키울 때는 가정을 우선시하고, 애 어릴 때는 애 키우는 것을 우선으로 하고, 사회공익은 참여는 할수 있지만 단계별로 중점을 조절하는게 좋습니다. 애 어릴 때는 애한데 초점을 두고 정력을 붓고, 하지만 너무 동떨어지면 안되니깐 사회활동은 회장이나 중요직을 맡지 말고 유지하기만 하면 좋을것 같습니다. 근데 요즘 좋은 점은 가정주부 하더라도 위챗으로 교류할 수 있으니깐, 가정주부를 하더라도 어떤 생각을 가지고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가끔씩 다른 가정주부와 비교해보면 억울할 때도 있겠지만 그런 생각을 바꾸는게 좋습니다. 저도 번역국에 있을 때 집에서 회사로 회사에서 집으로 울타리에 있어 우울증 걸릴것 같고 또 남편하고 같은 사무실이니깐 또 조선족여자로서 남편을 받들어야 하는 민족의 전통도 있고 하니깐 힘들때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완벽하게 하기는 어려우니깐 그렇게 하자면 너무 희생이 크고 스트레스가 쌓이니깐, 좋기는 단계별로 애 어릴때는 애한데 중점을 두고, 시대에 발전에 떨어지지는 말고, 사회에서 활동은 애도 어느정도 크고 자기도 어느정도 경력이 쌓였을 때 하는게 좋습니다. 그래서 차세대한데도 하는 이야기가 애를 키우고 할 때는 사회활동에 너무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요즘은 그래도 인터넷이 발달되어서 너무 많은 정력을 퍼붓지 않아도 사회활동이 가능하니깐 이제는 자기 마음만 잘 먹으면 사업도 가정도 잘 돌볼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질문 5: 조선족으로서 어떻게 우세를 더 살릴수 있을가

질문: 조선족이라는 정체성 자체가 역시 우리한데 우세도 될수 있고 브랜드도 될수 있고 불행을 가져올 수도 있는데, 그래서 해들한데도 우세를 살리고자 하는데, 어떻게 하면 애들한데 우리 정체성의 우세를 더 살리고 어떻게 하면 애들한데 불행을 감소시킬수 있을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답: 이 대답은 시대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저희가 어릴 때 문화혁명을 거쳤는데, 우리 부모세대는 일본어를 알면 일본특무, 또 조선특무 이래가지고 우리한데는 불행이 되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개혁개방시절에는 이것이 우리 우세가 되어서, 일본어 되는 분들은 일본유학을 우선 오게 되고, 또 조선말을 아는 분들은 한국과의 무역에서 남보다 빨리 움직이게 되고, 보면 개인의 힘으로는 초월하기 힘든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이 있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이 평화시대가 오래가기를 열심히 기도해야 할것 같고, 그리고 지금은 글로벌 시대이고, 중국도 一带一路를 추진하고 있는데, 60여개 나라를 연결하는데, 우리처럼 중국에 태어나 중국말도 잘하고, 한국말도 할수 있고, 일본에서 공부해서 일본말도 능통한 분들이 중국의 一带一路가 점점 잘될수록 앞으로 무대가 크지지 않을가 싶습니다. 적어도 이 무대는 40년 50년은 지속될수 있으니, 우리의 자녀들에게는 이 시대를 대비해서 글로벌 다문화 마인드(마음)을 가지도록 교육하는게 좋지 않겠는가 싶습니다.

그래서 일본에 태어난 애들에게는 일본에서 살아가기 위해 일본어가 제1모국어가 되어야겠죠, 그렇지만 우리는 또 중국배경있는데 중국어 놓치지 말고, 한국배경 있으니깐 한국어도 놓치지 말고, 또 글로벌시대니깐 영어도 배워서 이렇게 4개국어를 장악하면 우리는 세계 어느 곳에 가든 우수한 민족이고 어디에서 살든 잘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싶습니다.

감상공유의 시간 및 연변대학학우회측의 발언

김광림교수님의 감상공유

감상 및 소감을 공유해보겠습니다.

지난 3월16일, 동경에서 조선족연구학회와 연변대학, 그리고 조선족문화교류협회에서 공동주최한 호림선생님과 제가 강연하는 강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니이가다산업대학에 교수를 하면서 니이가다에 살고 있는데, 그날 16일날 세미나 마치고 이튿날 17일 오전에는 각 단체장들이 모인 연합회에 관련된 모임이 있었고, 오후에는 연변대학의 이사회가 있었는데 그기에서 김의진 리란 두분이 일본 오신다는 소식을 공유했고, 그기서 연변대학일본학우회 이사회에서 두분을 모셔서 좌담회 해보자는 이야기가 있어서, 원래는 인차 니이가다 돌아갈가 생각했는데, 두 분을 만나고 좋은 이야기 듣고 싶어서 사흘을 더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두분의 경력을 보니깐 대통령상을 받으면서 일본에 있는 조선족사회에 널리 알려진것도 사실이지만, 보니깐 북경에서도 이미 조선족들의 연합체를 위해 정말로 많은 공헌을 하신것 같은데, 그부분에 대해서 가장 이야기 듣고 싶었고, 그리고 아까 이야기 했던 이상철 교수님과 학생때 같은반이라고 하셨는데 저도 그분과 가깝게 지내는 사이라서 결국 보면 조선족은 울타리가 작아서 서로 잘 걸리는구나 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또 인연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한가지 소개하고픈게 있다면, 이번 2월21일에 일본에서 현재 30몇개 단체가 있는데 그중 20여개 단체의 단체장이라 할가 담당자들이 모여서 어떻게 힘을 합치겠는가 해서 조선족단체발전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허영수회장이 위원장으로 선거되었고, 이번달 3월17일에 거의 20여개 단체가 참여하여 제1차회의를 했는데, 전일본조선족연합회를 설립해보자는 방향으로 노력해보자 이런 이야기가 되었는데, 두분이 중국에서 아주 대표적인 인사이기도 하고, 그리고 우리도 앞으로 중국의 조선족과 연결고리가 필요할것 같은데, 앞으로 일본과 중국의 조선족들을 다리역할을 해주셔서, 세계로 흩어진 조선족들이 많이 교류하고 또 교류하면서 힘도 합쳐지고, 그렇게 될수 있도록 많이 협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의진선생님의 코멘트

참 좋은 말씀입니다. 사실 일본은 엘리트들이 가장 많이 모인 곳이고, 사회적으로도 엄청 발전되어 있는데, 이런 자원이 있는데 활용하지 않으면 정말 아깝죠. 뿐만 아니라 중국에 계시는 분들이 일본과 매칭하려고 하는데 창구가 없습니다.

우리가 뭉치면 무궁무진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중국같은 경우는 아까 이야기했다시피 법적으로 허가가 내려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렵고, 그리고 한국은 또 야당여당보다 조선족 내부의 싸움이 더 심합니다. 참 보기에 안됬습니다. 한국에도 조선족이 70만이라고 하는데 실제적으로는 최소 30만은 되겠지만 한국의 야당여당처럼 서로 싸우다보니 다 약해졌습니다 그러니깐 한국에 있는 중국대사관도 우습게 보고 한국 야당여당도 조선족들을 우습게 보는 안타까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일본은 질서가 잘 잡혀있는데 이제 일본이 잘 뭉치면 진짜 좋을것 같습니다. 물론 방법에도 따르겠지만 조선족들은 “니하면 나도 할게” 이런거 때문에 뭉치기 쉽지는 않은데, 사실 보면 우리 조선족은 참 우수한데 제일 결점이 다 잘난거 아닙니까. 그래보면 연변대학은 니것내것 없이 참 좋찮아요, 우리모두의 연변대학, 그런 동질성을 가지고 어려움은 많겠지만 가능성도 크니깐, 일본의 조선족들이 잘 뭉쳐서 전세계 조선족들의 모범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보충하면 우리는 다 눈치를 보죠. 중국에서는 한족들 눈치 보고 하지만 우리는 한족들보다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한국에서는 처가집생활이라 수모도 많이 받고 피해상처도 심한것 같습니다. 한국에 있는 분들에게는 옷도 한국사람 못지 않게 깔끔하게 입고 한국사람 못지 않게 말부터 해라 그게 그기에서 뿌리박고 성장해가는 기본이다 이렇게 전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보면 피해심이 더 강할거에요,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에서 뿌리박기 얼마나 쉽지 않습니까. 이제 저도 25일날 허영수회장 만나게 되는데, 사진으로 보면 일본사람 못지 않게 더 세련된 모습인데, 일본에서 일본사람 못지 않게 해 나가자면 여러분들이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피타는 노력과 눈치밥 먹고 마음에 아픔도 겪었겠는가 느껴집니다. 정말이지 전세계 조선족들의 모범이 일본에서 나와야 할것 같습니다. 그래서 진짜 기대가 됩니다. 일본은 일이잖아요 본이 하나인 일, 잘될것 같습니다.

호림선생님(연변대학일본학우회 명예회장)의 코멘트

아주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이제 금방 일본은 일이라고 하셨는데, 조선족 사이에는 많은 오해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걸 극복하고 해소시키면 정말로 일, 하나가 되어 똘똘 뭉칠수 있는것 같습니다.

연변대학일본학우회의 활동은 연변대학에서 주최하지만 모든 조선족분들이 다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참여를 환영합니다. 지난 2012년이었던가 그때 전세계 연변대학학우회 모임이 있었는데, 연변대 졸업하지 않은 분들도 참가했더랬습니다. 그래서 물어보니, 내 왜 연대학우 아닙니까 제가 어렸을 때 우리 반주임이 연대졸업생인데, 제가 아는 친구가 연대학우고, 병원에 가면 의사선생이 연대학우지, 법원가면 법관이 연대학우지, 연변대학학우 주변에서 살아왔기에 그래서 연대학우입니다. 그래서 보면 연변대학은 아까 김의진 선생님이 말씀했듯이, 우리 민족의 연변대학이고, 그래서 연대일본학우회도 항상 우리 민족의 발전을 위해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우리 민족의 성공에 역할을 하는 단체가 되고 싶습니다.

그럼 이제 의문 더 있는 분들은 장소 바꾸어서 술좌석에서 하도록 하고 좌담회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마치면서

정리하는데 여섯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날 당시에 듣고 기억이 생생했던 내용들이 이틀도 안되는 사이에 벌써 70%나 잊어버렸구나 하는 것을 메모를 정리하면서 다시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기록이란 것이 중요한것 같습니다.

강의를 들으면서 한쪽으로 메모한거라서 완벽하게 내용을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운 한편, 또 이렇게나마 그날 못 참가한 분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느껴봅니다. 만약 문장속에 오해된 내용이나 틀린 표현이 있다면 기록한 저의 잘못이니 너그럽게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휴가도 마다하고 귀한 시간을 내어주셔서 민족에 대해, 사업에 대해 좋은 내용을 공유해주신 김의진, 리란 부부께 감사를 드리고, 이런 장소를 마련해주신 장경호회장님을 비릇한 연변대학일본학우회에 감사를 드리며, 또 그날 모처럼 귀한 휴일에도 참여하셔서 좌담회의 장소를 불태워주신 모든 참가자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기록 / 배상봉
사진 / 연변대학일본학우회 위챗그룹 및 김권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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