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조선족의 로신” 김학철 조선족문학거장의 일생

자료제공 / 김해양 씨 (김학철씨의 아드님)

조선족 문학의 거장 – 김학철씨의 일생을 소개하는 동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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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아래는 일본의 유명한 조선족 연구학자 오무라 마스오 씨의 김학철씨에 대한 평가입니다. ( 원문링크 )

김학철(金學鐵, 본명 홍성걸(洪性傑), 1916∼2001)은 중국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한 소설가이다. 그는 1916년 11월 4일, 현 함경남도 원산부 남산동에서 태어났으며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중국으로 건너간다. 1935년 20세 나이로 상하이에서 의열단에 가입했으며, 이듬해 조선민족혁명당에 입당한다. 이후 1939년 항일 선전 활동을 시작으로 1940년 8월에는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조선의용대 제1기 대원으로 참전한다. 1941년에는 태항산에서 전투 중 포로로 잡히고, 1943년 8월 치안유지법으로 인해 10년 징역형에 받는다.(《사상월보》 103호). 김학철은 나가사키형무소에서 3년 동안 복역하던 중 조국이 해방되며 석방된다.

1952년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정부 주석 주덕해의 초대로 연길로 이주하지만, 1957년에 반동분자로 숙청당해 24년간 창작 권리를 박탈당한다. 1967년 2월에는 『20세기의 신화』을 썼다는 이유로 10년 징역형을 받고 연길구치소(미결), 장춘 감옥, 추리구(秋梨沟)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다 1977년 2월에 출소한다. 김학철은 1980년 12월 복권되고 65세 나이에 창작 활동을 재개한다. 이후 『항전별곡』, 『격정시대』, 『20세기의 신화』 등을 발표한다. 1985년에는 중국 국적을 취득하고 중국작가협회 연변 분회에서 활동한다. 1994년 3월에는 KBS 해외동포 특별상을 수상했고, 1996년 12월에 한국의 ‘창작과 비평사’를 통한 『20세기의 신화』의 출간을 계기로 한국을 방문한다. 이후 김학철은 매년 한국에 방문하지만 2001년 방한 도중 몸 상태가 나빠져 중국 연변으로 돌아갔고, 9월 25일, 84세의 나이로 영면한다.

김학철은 최초에는 중국 공산당원으로, 해방 이후에는 남조선노동당원으로, 다시 중국 공산당원으로 일생을 싸워온 조선인이었다. 그는 1945년 항일투쟁 운동을 하던 중에 일본군의 총탄을 맞고 한쪽 다리를 잃는다. 이후 “본래 소설을 쓸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어쩌다 일본군이 총탄 한 발을 내 다리에 선물해 줘서 말이야. 한쪽 다리를 잃고서는 군인으로서 활약할 수 없었다. 그래서, 좋아, 그러면 써주마, 하고, 규슈 이사하야 감방 안에서 결심했다.”며 문학 활동을 시작한 동기에 대해 언급한다. 실제로 김학철은 중학생 시절부터 문학자들을 만나기 위해 《조선문단》에서 사실상 무급으로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팔로군에서도 동지의 추도가와 연극 대본을 쓰면서 문학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 한국전쟁 당시 한·미군이 평양까지 진출했을 때와 맨몸으로 북방으로 향했을 때도 『조용한 돈강』 2권을 가지고 다닐 만큼 문학에 큰 관심을 보였다.

김학철은 스스로 “인간의 모습을 한 사회주의”라고 말할 정도로 강한 사회주의자였다.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문학과지성사, 1995)에서는 상하이 시절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헝가리 페퇴피의 시집과 일본의 사회주의 경제학자 가와카미 하지메의 『가난 이야기(貧乏物語)』라고 했다. 그는 가와카미에게 국가・민족・인권이라는 종(縱)이 아니라 횡(橫)으로 보는 시점을 처음으로 배웠고, “독립운동에 몸을 던진 내가 적국의 경제학자가 쓴 책을 읽고 계급의식에 눈을 떴다”고 언급했다. 그는 팔로군(八路軍) 생활을 필두로 자신의 체험을 소설화했다. 특히 『항전별곡』과 『격정시대』를 통해 조선의용군의 활약상을 다루었다. 그중 『항전별곡』은 집필 정지 24년, 강제노동 10년에서 풀려난 이후에 발표된 최초의 장편이라 큰 주목을 받았다. 『20세기의 신화』는 중국의 대약진운동 이후 마오쩌둥의 실패를 정면으로 마주 보고 비판한 작품으로서 “눈앞에 불합리한 현상이 있으면 그것과 싸운다”는 문학적 태도를 보여주었다.

김학철의 문학은 항일투쟁을 전면화하고 공산 체제의 지역성을 근간으로 남북 문학과는 다른 독자성을 보여주었다. 비록 “문학 양식에서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고착되었던 관계로 연변의 우리 동포 문학은 그 주제와 소재 면에서 모국의 독자들을 얻는 데 일정한 한계성”이 있지만, 냉전 시대의 국가 중심주의에서 탈피한 세계화 시대의 현재적 지점을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나 문학사적으로 주목된다. 그리고 이러한 조선족 문학의 변용 현상은 중국의 현대문학을 비롯해 남북한 문학, 동아시아 문학,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학, 세계문학과 이루는 관계 속에서 앞으로도 확장될 것임을 시사한다.

오므라 마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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