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간 이문화(異文化)의 해결사 ATTO – 리금자사장 채방기 / 길림신문 리홍매특파원

재일본 조선족기업인 리금자사장의 창업 스토리





일본 동경에 본사를 둔 ATTO주식회사의 리금자사장

글로벌 시대, 많은 사람들이 외국에 정착하고 살고있는 현실에서 일본에서 기업인으로 성공한 모델중의 한사람인 일본 조선족기업인 리금자사장을 니혼바시(日本橋)에서 만나게 되였다.

《중국, 일본, 한국간 문화의 차이가 글로벌시대 여러 기업들의 장애가 된다. 여러개 나라 언어와 문화에 익숙한 우리가 징검다리역할을 할수 있어서 다행이다. 》일본 동경에 본사를 둔 ATTO주식회사 리금자사장의 의미있는 한마디였다.

예리한 눈빛과 환한 미소가 인상적인 그녀는 헤어스타일 하나 흐트러짐이 없는 카리스마에 끌려 필자는 그녀의 지난 49년 인생 렬차의 문을 열어보았다.

길림성 안도현 명월진의 한 평범한 가정에서 네 자매의 막내로 태여난 리금자사장은 부모님의 아낌없는 사랑속에서 구김없이 자랐다. 그녀가 어렸을 때 늘 꾸던 꿈이 있었는데 바로《수도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였다.

1985년 중국인민해방군 정주공정기술학원 입학통지서를 받은 것이 그 꿈을 이루는 첫 발자국이 되였다. 한어에 능숙하지 못했던 열여덟살 소녀가 철같은 규률과 언어의 벽을 마주하고 안타깝게 눈물을 흘렸던 기간이 거이 1년이라 한다.

4년후 우수한 성적으로 인민해방군 총참모부에 배치되여 드디어 수도 북경에 입성하는 꿈을 이룬 셈이였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공무원직이였지만 점차 생활속에 률동과 자극이 부족함을 느끼게 되였다.

섬세하고 곧은 성격의 그녀가 일본인의 문화에 흥취를 갖고 류학의 길을 택한 것은 1995년이였다. 코쿠가쿠인 대학(国学院大学)경제학부를 졸업하고 2001년 일본회사인 NTT커뮤니케이션즈 국제부에 취직하여 중국어, 한국어의 일본어 번역, 통역업무를 맡았다. 엄한 군교에서의 생활습관이 몸에 배여서인가 시간과 약속을 철같이 지키는 일본사회에 인차 적응이 되였다.

하나를 이루면 또 다른 욕망이 늘 그녀를 자극하군 했다. IT엔지니어인 남편과 결혼하고 첫애를 임신하여 회사를 그만두게 된것을 계기로 2006년 IT엔지니어 파견회사인 ATTO유한회사를 설립하여 오래동안 품어왔던 경영자의 꿈을 이루었다.

순조로운 길만은 아니였다.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영향을 받아 거의 경영이 중단상태에 처해 남편의 회사수입만으로 간신히 지탱할수 있었다. 그때의 위기가 아니였더라면 오늘의 ATTO가 없었을거라 말하는 리사장의 얼굴에서 그때가 몹시 힘든 과거였음을 직감하게 했다.

위기는 챤스! 생각과 고민에 시달리던 끝에 회사초창시기에 지인의 소개로 북경의 한 화학제조업체의 형광표백제의 수입을 도왔던 기억을 떠올렸다. 회사방향을 바꾸게 된 계기가 바로 그것이였다. 하여 2008년ATTO는 의약중간체등 화학품수입을 주요한 기업항목으로 하는 무역회사로 탈바꿈을 하게 되였다.

새로운 항목과 무연한 리사장은 중소기업지원센터에서 고문을 초빙햇다. 시간당 2만5천엔의 고문료를 지불하기가 버거웠던 그때, 시간이 금전이라는 말의 뜻을 너무나 깊이 깨달았다 한다. 그때 둘째를 임신중이였던 리사장은 만삭이 된 배를 옷으로 감추면서 굳게 닫혀있는 기업들의 문을 하나하나 노크했다. 쉽지 않은 길이였다. 거절을 당할때마다 밤잠을 설치면서 당당하게 그들앞에 나설 그날을 눈물로 다지고 또 다졌다.

첫 계약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다. 국제전시회에 참가하러 오는 중국기업과의 협상날자가 출산예정일과 거이 맞물리게 정해졌었다. 제왕절개날자를 통보받은 날, 그녀는 의사선생을 찾았다. 수술후 충분한 회복시간을 가지고 만단의 준비로 협상에 나아갈수 있도록 제왕절개날자를 열흘정도 앞당겨 달라는 그녀의 요구는 물론 거절당했다. 그녀의 끈질긴 부탁과 설득에 결국 동의하고야만 의사선생도 그녀에게는 첫 계약을 성사시킬수 있게 응원해준 여러 사람중의 한사람이라 한다.

오늘날의 ATTO주식회사는 신용있는 중국•한국제조업체로부터 의약품중간체, 유기화학품•무기화학품, 화학공업제품, 화장품, 전자재료 등의 원자료를 수입하여 일본국내외에 판매하는 원자료 수출입종합상사이다.

이들은 중국, 한국의 100여개의 화학품 제조업체, 연구기관과 협력하여 신규물질의 개발, 소량샘플의 생산, 대량의 위탁생산도 진행하고 있다. 한걸음 나아가 자체만의 독특한 네트워크로 제조업체를 찾아 아직 빛을 못본 새로운 원자료생산도 가능하게 하고 있다.

회사규모도 그닥 크지 않고 올해 창업 10주년밖에 안되는 ATTO회사가 현재  武田薬品、大鵬薬品、第一三共、田辺三菱、大塚製薬 등등 일본의학품업계의 대기업들과 손을 잡게 된데는 그들만의 장점이 있기때문이였다.

우선 일본의 대기업들에 흔히 존재하는 복잡한 보고절차를 개선하여 신속히 판단하고 조치를 취할수 있도록 하였다. 주문을 받은 당일에 벌써 중국과 한국의 거래처들과 협상하여 구입루트를 파악하고 견적서를 작성하여 주문회사에 보내는 신속함, 그리고 모든 업무를 리사장이 직접 파악할수 있다는 점, 견적서 한페이지에서 거래내역 모든것을 확인할수 있다는 정확함, 대기업에 비해 삭감되는 비용을 관련 업체에 환원하는 등 합당한 가격설정과 고객만족 중심으로 이어지는 신뢰, 이런 모든 업무를 소화할수 있는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영어 4개국 언어에 능숙한 인재발굴에 힘을 아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또한 올해 11억3천만엔(약7천3백만원)의 판매액앞에서 래년의 목표를 14억엔(약9천만원)으로 정할수 있는 자신감의 근거이기도 하다. 리금자사장은 2012년에 중경에 화공유한회사를 설립한 뒤를 이어 2015년에 상해에 사무실을 세우는 등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리금자사장에게 있어서 열살되는 아들애와 여덟살짜리 딸애는 항상 미안한 존재이고 남편은 가장 가까이에서 그녀의 평정심을 유지시켜주는 든든한 기둥이다. 토요일, 일요일은 가정에 돌아간다는 그녀, 다른 사람의 아픈 이야기를 들으면서 쉽게 눈물을 흘리는 그녀, 한달에 한번씩 미용원에 가는 것도 정해진 스케쥴이라며 웃는 그녀의 모습에서 엄마이고 안해이고 녀성이고 때론 “남성”이기도 한 인간 리금자를 보게 되였다.

거의 다섯시간의 대담( 対談 )끝에 자리를 뜨며 건네는 그녀의 말이다.《일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언어소통보다도 문화의 소통이다》. 색상 하나에도 말로 표현할수 없는 감수의 차이가 존재하는 중국, 일본, 한국의 민족문화, 미묘한 차이가 큰 실패를 초래할수있다는 그 말의 무게를 회사이름과 련결시켜 보았다.

「백경분의 일」이라는 뜻을 담은「ATTO」, 그 섬세함과 보장된 품질을 무기로 중•한•일 3개국을 이어주는 든든하고 화려한 무지개다리가 눈앞에 그려졌다.

리홍매/일본특파원

출처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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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cy Lee
Lucy Lee
2019년 6월 30일 8:18 오전

안녕하세요.
뉴욕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입니다.
허영수사장님에 관한 내용 감명깊게 보았습니다.
저도 고향이 룡정이고 일본에도 9년간 거주했었고 현재 뉴욕에 온지 11년이 되었습니다.

일본과 미국사이 조선족교류도 아주 작게부터 시작하더라도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며칠전 월드옥타 하용화회장님 잠긴 뵌적 있고
일본 옥타가 이렇게 많은 조선족들이 있는걸 보고 놀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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