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개인은 대체 가능 로동력이 아닌 작품으로 살아가야 한다 – 안유화교수 인터뷰 / 흑룡강신문기자 윤희

쉼터편집의 말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조선족들에게 현재의 세상은 하나의 기회이기도 하지만 또 하나의 도전이기도 합니다. 특히 일본에서 살아가는 우리 조선족들에게도 힌트가 될것 같아서, 흑룡강신문기자 윤희씨의 투고를 받고 쉼터에도 올려 여러분들과 공유해 봅니다.

새해가 밝은 1월 3일 한국 연합뉴스 본관에서 성균관대학교 중국대학원 안유화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상해복단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과정을 거쳐 연변대학교 교수로 재직을 하고 그후 한국 고려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박사를 하면서 한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 한국예탁결제원 객원연구원,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약하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중국대학원 교수직를 맡고 있고 또한 한국 각종 경제채널에의 출연과 스스로의 이름은 건 [안유화 쇼]를 통하여 경제 전반에 대한 넓은 리해와 깊은 통찰, 예리한 분석, 뼈때리는 조언까지 아끼지 않은 안유화 교수와, 그의 자라온 유년시절을 되돌아 보고 앞으로의 꿈 그리고 조선족으로써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눠보는 시간을 가졌다.

유년시적을 되돌아 보면서

유년시절은 근심, 걱정없이 천진란만하고 행복하게 지내온 것 같다. 승벽심이 많고 당돌했던 주위의 또래들과 비교하며 항상 걱정해주시던 아버지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런 아버지가 소학교 4학년때 돌아가시게 되면서 아버지를 그리워 하는 마음과 하늘나라에서 보고 계실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였다. 열심히 하다 보니 성적도 오르고 공부에 재미도 느끼게 되였다. 나름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생활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노력한만큼 보답이 따른다는 사실도 그때 알게 된 것 같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건 아버지의 덕분이다. 나중에 책을 쓰게 되면 꼭 아버지의 이름을 넣고 싶다. 남들보다 빨리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의 책을 통하여 세상에 남겨지게 하는게 꿈이기도 하다.

대학생활과 직장생활을 되돌아 보면서

경제, 력사등 문과를 굉장히 좋아했지만 시대적으로 문과보다는 리과를 선호하던 시절이라 길림화공대학 화학공정(化学工程) 전공을 선택하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대학을 졸업하면 직업을 안배해주던 시절이였고 졸업후 연길호구였었기에  연길시농약공장(延吉市农药厂)에 안배를 받게 되였다. 그러나 연길보다는 대도시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컷기에 과감히 거절하고 홀로 취직을 시작했다. 우연히 신문을 보던중 계림에 있는 카나다 기업의 구인 광고를 보게 되였고 화학공정 전공의 남자 엔지니어를 찾고 있었다. 계림에 대한 기대와 외국 기업에 대한 동경으로 반드시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사장한테 왜 꼭 남자여야만 하는지 저는 여자이지만 남자보다 일을 더 잘 할수 있다는 자기소개와 함께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어린 친구의 당돌함과 편지에 감동한 사장의 요청으로 면접까지 보게 되였고 무사히 합격하였다. 그러나 당시 성을 넘어 취직(跨省就职)하는 경우 인재를 빼앗아 가는 것으로 리해되는 시대였었기에 광서성 교육부에서 길림성 교육부에 벌금을 지불해야 되는 상황이였다. 법률적이고 제도적인 문제였지만 잘 해결이 안되는걸 보면서 어린마음에 왠지 모를 책임감을 느껴 힘들게 취직한 회사를 그만두게 되였다. 부담을 감당하는 능력 또한 스스로 길러야 한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되였다.

집으로 돌아와 무엇을 할까 고민하고 있던중 지인이 연변호리대학교 총장사무실에서 컴퓨터를 잘 하는 친구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안유화 교수를 추천하였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대학에서 만들어 보기는 했어도 잘하는 정도는 아니였지만 당시 면접을 봤던 교수님이 긍정적으로 총장한데 추천해준 덕분에 합격되여 면접본 다음날부터 총장반공실 컴퓨터담당교수로 출근하게 되였다. 점차 컴퓨터뿐만 아니라 대학교때의 전공을 살려 화학, 통계학등 과목의 강의도 병행을 하였다. 뒤돌아보면 노력하는 자에게는 항상 기회가 찾아오는 것 같다. 또한 노력을 해야만 기회가 왔을때 발 빠르게 잡을수 있는거다.

새로운 도전

무난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에 경제공부에 대한 열망이 항상 있었던 것 같다. 하여 결혼과 육아를 계기로 잘 다니고 있던 연변호리대학교에 사표를 내고 경제학 석사공부를 시작했다. 집에서도 가까운 연변대학 경제학부에서 석사과정을 시작하였고 연변대학 경제학부와 상해복단대학 경제학부의 교류학생 제도 덕분에 유일하게 뽑혀 석사과정을 상해복단대학에서 마치게 되였다. 상해에서 처음으로 큰 세상을 마주하였고 여직껏 작은 울타리안에서만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되였다. 하루하루를 거의 책에 뭍혀 살다싶이 하였고 경제관련 서적은 물론 경제학자들의 자서전들까지도 가리지 않고 모두 읽었다.

석사공부를 끝내고 연변대학 교수로 강의를 하던중 한국 고려대학교 장하성 교수와의 인연으로 장학생 조건으로 박사공부를 할수 있는 기회가 생겨 한국에 오게 되였다. 당시의 한국은 중국인들에 대한 시선이 별로였던 시기였고 또 조선족에 대한 편견도 있었던 시기라 공부하는 내내 너무 외롭고 힘들었고 모든걸 포기하고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러나 이미 시작한 만큼 꼭 끝을 보아야겠다는 집념으로 버텨냈다. 전혀 모르는 영어로 모든 박사과정을 듣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보다도 더 힘든 여러 인간관계를 견뎌내야 했다. 주위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으니 박식하다고들 하지만 박사공부 전과 후를 비교했을때 가장 큰 변화는 지식의 량이 아닌 어려움을 견디는 능력인 것 같다. 박사과정과 비교하면 모든 어려움은 어려움도 아니라고 감히 말을 할수 있다. 박사과정중 자본시장연구원의 제의를 받아 연구위원으로 일을 하게 되였었고 박사 졸업후에는 성균관대학교의 제의로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되였다. 좋아서 시작한 경제공부이지만 많이 배우고 스스로를 발전시키려고 노력을 하다보니 기회가 찾아왔고 그때그때 주어진 기회들에 최선을 다 하다보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앞으로의 꿈에 대하여

얼마전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얼바인대학원(https://universityirvine.org/MBA)을 인수하게 되였다. 제의를 받아서부터 인수까지 몇개월을 고민했다. 왜 내가 해야 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하여 수도없이 고민했다. 지금까지 대학교 강단에서 강의를 해왔었기에 현재 대학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잘 알고 있고 그런것들을 해결할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제의를 받아들이게 되였다. 또한 앞으로 세계가 나아가게 될 방향성으로 봤을때 인재 양성과 네트웍 구축이 절박하다는 생각이 컸다.

얼바인대학원은 공대 대학원이고 주요하게 빅데이터, AI, 디지털금융, 메타버스등 데이터사이언스(数据科学)를 위주로 데이터 엔지니어를 양성하는 석사과정과 자산관리MBA(자산관리경영) 석사과정이 있으며 평생교육원 과정을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코로나 이후로 세상은 온라인 시대로 바뀌고 있다. 대학도 마찬가지이다. 단순한 줌(zoom)온라인이 아닌 메타버스 온라인 세상이 다가와 있고 인재들이 한없이 필요한 세상이 되어 있다. 얼바인대학원도 최고의 교수들을 초빙하여 메타버스 분야의 인재를 많이 양성할 계획이며 기업과의 협력, 인재들간의 네트웍 구축에도 힘쓸 것이다. 강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하여 할 것이며 세계 어느곳에서도 제한없이 입학 가능한 환경과 시스템을 만들 예정이다.

또한 세계온라인학회를 설립하였고 전문가들을 동원하여 업계의 동향, 연구, 조사, 자문, 인재양성등 이슈들을 공유하며 년 2회정도 미국과 세계 각국에서 순회로 대형 포럼도 진행할 예정이다.

변화되고 있는 세상에 대한 정확한 리해와 전문인재의 양성이 잘 결합되였을때 비로소 개인의 발전, 회사의 성장, 나아가 사회의 긍정적인 발전까지 이루어질수 있기 때문이다.

조선족들에게 조언이 있다면

조선족들은 정체성에 대하여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전혀 필요없는 고민이다. 우리는 중국에서 태여났고 다문화를 겪으면서 자라왔기에 새로운 문화에 잘 적응하고 새로운 것들에 대하여 고정관념이 없이 받아들이는 장점이 있다. 지금의 시대는 국경을 넘어 메타버스 시대이다. 지역, 국가에 제한되지 말고 세계를 무대로 스스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먼저이고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에 있어서 개개인이 어떻게 하나의 작품이 될지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한 로동력은 로봇이 대체하는 시대이다. 개개인이 대체 불가능한 작품으로 세상에 남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철학이고 정체성인 것이다.

또한 메타버스 시대는 누구나 작품이 될 수 있는 시대이다. 방법론과 네트웍 만이 필요하며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향상시켜 기회가 왔을때 잡을수 있는 역량을 만들어야 한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동등하게 오기때문에 항상 준비를 해야 하며 준비한 자가 살아남는 세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의 사적인 리익보다 상대의 리익을 생각하고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너무나 어렵고 쉽지 않는 일이지만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도 사업의 시작은 중소기업의 편리와 발전을 도모하기 위함이였듯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생각하고 고민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금방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나만을 위한 사고방식으로 스스로의 한계를 뛰여넘기는 어렵다. 남을 위한 사고방식 즉 세상을  위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할때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를 넘어설수 있게 된다.

중국, 한국, 일본은 린접해 있고 같은 유교권 나라이면서 서로 많은 장,단점들이 있다. 아세아경제는 세 나라의 협력에 크게 좌지우지 되기도 하는데 아쉽게도 서로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 우리에게는 언어라는 무기가 있다. 언어는 한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리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는 우리 조선족들에게 기회이므로 끊이없이 배우고 스스로의 글로벌 경쟁력을 구축할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를 통하여 상대방이 중국 혹은 일본에 대한 리해가 깊어지고 넓혀질때 이는 “나”의 경쟁력으로 되는 것이고 작은 경쟁력 하나하나가 모여 대체불가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숫자 1을 가장 쉽고 명쾌하고 정확하게 설명하려면 아마도 100 적어도 10까지는 잘 알고 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안유화 교수의 거시적 경제에 관한 미시적 시각, 미시적 경제에 관한 거시적 시각과 시대를 통찰하는 능력, 그리고 세상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능력은 그의 넓고 깊은 지식과 그동한 쌓아 온 노력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해주었다.

“조선족은 유대인의 사고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이는 2016년 9월 안유화 교수가 한국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조선족들에게 건넨 조언이다. 유대인의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중국, 한국을 넘어서는 사고방식을 키워야 하며 글로벌인으로 살려고 노력해야 하고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그의 생각이였다.

순박하지만 타협하지 않고 따뜻하지만 흔들림이 없고 소탈하면서 열정적이고 초지일관 스스로의 신념을 지켜가고 있는 그녀이기에 세상은 오늘도 열광하고 있고 박수를 보내고 있는 듯 싶다.

글 / 윤희

사진제공 / 안유화 교수 오피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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