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우리들의 사는 이야기 22] 나는 조선어문 교원이다 by 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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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 / 윤련순, 음악편집 / 변소화

나는 조선어문 교원이다

글 / 김경희

1987년도 흑룡강성오상조선족사범학교 제1기 졸업생으로 고향마을에 분배받은 나는 소학교 5학년 졸업반 조선어문을 담당하게 되였다.

그때 나의 나이 19살, 애들과의 나이차가 많아서 7살이였고 시골에 있다가 늦게 학교붙은 애들과는 3~4살차이밖에 안되였다. 정말 애가 애들을 가르친다는 농촌 아줌마들의 말과 똑 같았다.

머리 큰 남자애들은 성냥갑안에 시퍼런 버들벌레를 넣어서는 나를 보고 열어보라고 해서 나를 놀래우기도 했고 뱀껍질을 휘저어서 나를 질색시키기도 했다. 그때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놀라는 애된 처녀선생님이 그렇게 걔들한테는 재미나는 놀이풀이 대상이였다.

심지어 수업시간에 내가 과문을 읽어줄 때도 늘 상스럽지 못한 소리로 큰소리를 내어 왕왕 읽기까지 했다. 나는 처음에 그런 상황이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아 애당초 조선어문교원이 아니라 눈물교원이라 불리게 되었다.

눈물로 머리 체적만 크고 배운 게 없이 상스런 아이들을 가르치다가는 나의 한생을 교육사업에 불사르겠다던 인생목표는 죽도 밥도 아니될 것이였다. 그때 내가 이를 악물고 일어선 것이 곧바로 조선말교육으로 그들을 굴복시키고 순종시키겠다는 결심이었다.

나는 애들의 호기심을 끌만한 력사인물들의 재미나는 이야기들을 교학중에 심심찮게 끌어들이며 애들의 마음을 샀고 반에서 말썽꾸러기애에게 재미나는 영웅이야기를 들려주어 그가 반 애들앞에서 장기표현하는 그 기회를 빌어 그 애를 높이 칭찬해주는 것으로 다른 애들도 해보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따라서 조선어과목에 대한 학습흥취도 불러일으켰다. 조선어문교학을 재밋게 한다는 인상이 서서인지 자기들의 참여의식이 서서인지 이제 머리 체적만 크고 배운 게 없이 상스러웠던 애들은 더는 이상하지 않았고 나를 어린 선생대하듯 하던 학생들도 더는 찾아볼 수 없게 되였다. 오히려 아침문을 열고 출근하려고 보면 언제 가만히 가져다 놓았는지 민들레요, 쑥이요, 미나리요…등 나물들이 반갑게 나를 맞아주곤 하였다. 한번씩 산골마을에 다녀오는 애들은 고향샘물이랑 산열매랑 고사리랑 취랑 더덕이랑 가져와 맛보라면서 주는 것이였다. 눈물 나도록 고마운 애들의 순진한 마음이였다. 애들을 늦게까지 보도해 줄때면 터전 과일이랑 맛있는 먹거리들을 나의 책상에 슬그머니 놓고 돌아서는 귀여운 아이들이 많아졌고  늦은 시간에 퇴근할 때면 남자애들은 마치 호위병이나 된듯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나를 집까지 배웅하는 것이였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걷는 것이 별재미라면서 말이다. “지식은 힘이다”는 도리를 잘 익혀가는 시간들이였다.

교원사업을 시작해서 겨우 석 달이 지났는데 학교에서는 나에게 향(乡) 내 조선족소학교 조선어 공개수업을 내놓으라는 임무를 맡겼다. 나도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선뜻이 그 임무를 맡아 나섰다.

나는 사범학교에서 배운 류남현 선생님의 교수법과 석달내에 “골치덩이”들을 학생으로“귀의”시킬 수 있었던 수단-인물이야기를 결부시켜 교수안을 준비한 후 향 내 조선족학교교원들이 수업경청을 하는 가운데 예전처럼 수업을 편하게 진행했다.

나의 공개수업은 반응이 아주 좋았다. 우선 과목에 대한 나의 수업이 아주 독창적이란 평가를 받았고 수업중에 신화인물이나 역사인물의 이야기를 간간히 간을 치면서 과목에 대한 흥취를 불러일으킨 것, 수업이 끝날 때까지 여러 인물들의 성격을 완벽히 소화해내어 우리 조선족어린이들에게 우리 민족의 역사이야기를 심어준 쾌거라고 절찬을 받았다.

그 후, 나는 수업에서 우리민족의 풍속, 성씨, 예의 등을 틈틈이 끼워넣어 조선족어린이들이 자기민족의 생활풍속과 전통을 알게 하고 자기민족의 역사를 알게 하였다. 이런 나의 독특한 수업은 더욱 큰 성과를 이루어 현, 시, 성 에 이르는 교학경색들에서 자주 선을 보이게 되였다.

한해한해 애들을 초중에 올려보내면서 어딘가 뭔지 모를 그 무엇인가를 채 해주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였는데 내 아이 1학년 때 “수정체속에서”란 글을 계발 지도해 아동세계 20주년 글짓기콩크르에서 은상을 수여받으면서 그 늘 모자라는 부분이 무엇이였던가를 무릅치며 깨닫게 되였다.

조선어문교원으로서 수업에서 좋은 성과를 이룩해야 할 뿐만아니라 우리 조선족어린이들이 자기 앞 글짓기를 잘하고 자기 앞 표달을 잘하는 것이 조선말학습의 최고목표가 아니겠는가!  1학년 애도 계발과 계시를 통하여 멋진 글을 써내는데 하물며 고년급 아이들이야 더 잘해낼 수 있지 않을 가. 그때부터 퇴직을 앞둔 지금까지 학생들에 대한 글짓기지도를 견지해오고 있다. 상과시간이든 과외시간이든 기회만 되면 애들에게 우리 말 글짓기공부를 가르쳐 주었다. 휴식일에도 40평짜리 나의 작은 집에 글짓기에 흥취가 있는 애들을 불러들여서 북실대며 일기쓰기로부터 시작하여 이야기글, 독서감상문, 동시, 동요 등 애들에게 맞는 문체의 글짓기지도에 정력을 쏟아넣었다. 그리하여 쩍하면 흑룡강성 소학생간행물인 “꽃동산”과 소년보에 내가 지도한 애들의 글들이 실렸고 최미영, 리빈, 한영, 김화복, 안영, 김윤천, 주현미 등 애들은 홈타민컵, 새별컵, 희망컵, 소년아동 클짓기콩클, 꽃동산 글짓기콩클들에서 륙속 은상, 동상의 우수한 영예들을 획득하는 호황기를 이루었다. 현 진수부에서도 현 조선어문작문과 공개수업을 조직하여 나의 작문과지도를 전현 선생님들께 선 보였다. 물은 트는데로 흐른다는 속담을 잘 익혀가는 과정이였다.

또 한가지는 우리 애 2학년 때 전시 조선족 랑송, 랑독, 이야기, 악기, 무용시합이 있었는데 우리 애한테 “콩쥐, 팥쥐”라는 제목의 이야기를  훈련시켰다. 후엄마와 콩쥐의 역을 어찌도 생동히 잘 표현하였던지 총점 96점으로 2등점수 92점을 시원하게 뒤에 따돌리고 모든 항목 통털어 특등상을 수여받았다. 나도 당연히 특등지도상을 수여받았다. 그때부터 학교령도에서는 2년에 한번씩 있는 시 랑독, 랑송, 이야기대회때마다 나에게 큰 희망을 걸곤 하였다. 나도 학교령도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평상시상과부터 줄곧 노력에 노력을 경주하여 번마다 특등상을 배출해 냈고 최우수지도교원의 영예를 따내곤 하였다. 진심은 통하게 되여있다는 도리를 잘 체득해가는 길이였다.

황지혜네 반  6학년 조선어문을 맡을 때의 일이다. 그해 부주의로 쇄골골절상을 입고 수술한 뒤끝인지라 몸의 회복이 제대로 못된 상황에서 힘들게 졸업반 조선어문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전국조선족학생 작문경색-”만방컵” 작문경색통지가 하달되였다.

“선생님 신체정황 잘 아는데 참으로 딱한 사정인 줄 잘 아는데 어쩌겠습니까? 경색엔 참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선생님께서 힘드신대로 애들 글짓기를 지도해 주세요. 글짓기지도는 애들을 집에 불러다 집에서 해도 됩니다.”

이렇게까지 나오는 학교령도앞에서 나는 더 할말을 찾지 못하고 령도들의 뜻에 따라 애들 글짓기지도를 떠메기로 약속하였다. 평상시 교학에서 닦은 내공과 반달가량의 짧은 시간의 피타는 노력을 거쳐 끝내 황지혜학생은 “만방컵” 특등상을 획득하였고 나도 따라서 특등지도상을 수여받게 되였다. 노력과 성공의 정비례관계를 잘 터득해가는 길이였다.

이때쯤하여 누군가 나를 깨우쳐주는 사람이 있었다.

“애들 글을 그렇게 잘 지도하고 애들 랑독도 그렇게 잘 지도하는데 왜 자기 글은 못 발표하고 자기 랑독은 과시 안합니까? 자기 꿈도 꾸고 이루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잘 생각해 보니 참도 의리맞는 말이였다. 조선어문교원으로서 조선어문령역에서 응당 애들의 솔선모범이 되여야  하지 않을 가. 그때부터 애들 글지도, 랑독지도와 함께 나의 글도 쓰기 시작했고 나의 랑독제고에도 본질적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한국  KBS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 방송에 나의 글 두편과 애들 글 네편이 련속으로 우수상에 당선되여 방송되였고 중국조선어방송에도 7편의 나의 글이 방송되면서 나도 해낼 수 있다는 신심을 더욱 가지게 되였다. 그뒤로 꾸준한 학습과 파고드는 정신으로 노력을 경주한 결과 민족문학을 비롯하여 연변문학, 장백산, 송화강, 도라지 등 잡지들과 여러 신문들에 륙속 나의 글들이 실리고 애들 글도 흑룡강신문, 길림신문에 자주 게재되였다. 한쪽으로는 “아침을 열다”란 나의 첫 시집도 한국에서 출판되여 세상에 고고성을 터뜨리게 되였다. 씨앗은 뿌려야 했고 열매는 잘 가꾸어야 성공의 희열을 맛볼 수 있었다.

어제도 랑독준비로 부지런히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애들의 동시조 14수가 소년아동에 발표되고 두만강 청소년시화전에서 우리 애들의 동시가 은상, 동상의 영예를 받아안았다는 좋은 소식이 전달되였다. 마음에 댕겨서 하는 일은 언제나 속도가 났고 효률이 좋았다.

그렇다. 나는 조선어문교원이다. 조선어문교원으로서 매 과당 조선어문교수를 훌륭히 완성하고 우리 글로 된 글짓기를 훌륭히 지도하고 우리 말 랑독, 랑송, 이야기를 훌륭히 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나의 본직이 아니겠는가! 또 조선어문교원으로서 자기부터 학생들의 솔선모범되여 우리 말과 우리 글을 훌륭히 익혀가고 전파해가고 공유해가는 것이 나의 천직이 아니겠는가! 지나온 인생에도 조선어문교원으로서 그렇게 살아왔거니와 앞으로의 인생에도 조선어문교원의 키를 단단히 부여잡고 우리 민족의 말과 글을 이어가는데 한몸을 불태워 갈 것이다.

장미꽃의 아름다움은 꽃에 있다지만 꽃을 받쳐주는 든든한 줄기와 꽃을 지켜주는 든든한 가시가 없다면 어찌 꽃의 아름다움을 운운할 수가 있겠는가! 꽃이 우리 민족의 얼로서의 우리 글과 우리 말이라면 나는 달가이 꽃을 떠이는 줄기가 되고 꽃을 지키는 가시가 되리!

아래 내용을 클릭하시면, 협찬기업 리스트, 협찬개인 리스트, 협력단체 등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주식회사 A-YO상사(Caraz) : 전심혁 사장
2. 전일화부동산협회: 金山張虎 회장 
3. 글로벌일통 주식회사: 권호군 사장
4. 주식회사 에무에이: 마홍철사장
5. 주식회사 아시안익스크레스: 리룡식 사장
6. 주식회사 G&T: 박춘화 사장
7. 주식회사 플램핫: 리승희 사장
8. 쉼터물산: 김정남 사장
9. 주식회사 베스트엔터프라이즈: 리성호 사장
10. 삼구일품김치: 리성 사장
11. 시루바포또 유한회사: 서성일 사장
12. 주식회사JCBC: 엄문철 사장
13. 동화(東和)솔루션엔지니어링구 주식회사: 최장록 사장
14. 마즈도향양양(松戸香羊羊): 권룡산 사장
15. 주식회사 타겐고시스템연구소: 김만철 사장
16. 주식회사 HANAWA: 리성룡 사장
17. 주식회사 아후로시: 上田一雄 사장
18. 주식회사 PLZ: 박금화 사장
19. 스튜디오 아키라: 변소화 사장
20. 카바야한방연구소: 로홍매 소장

1. 최우림 박사: 중국농업대학 박사, 전일본중국조선족련합회 부회장
2. 장경호 회장: 신일본미술협회 심사위원, 연변대학일본학우회 회장
3. 김광림 교수: 일본니가타산업대학교 교수, 일본도쿄대학교 박사
4. 리대원 회장: 재일장백산골프우호회 회장
5. 박춘익 사장: 주식회사BTU 사장
6. 리숙 사장: 주식회사미사끼(実咲) 사장
7. 최운학 회장: 일본훈춘동향회 회장
8. 구세국 회장: 재일조선족배구협회 회장
9. 박진우 본부장: 金子自動車 본부장 南越谷점장 국가2급정비사

일본조선족문화교류협회 계좌안내:
銀行名:三菱UFJ銀行 日暮里支店(普) 0554611
名義:一般社団法人 日本朝鮮族経済文化交流協会
【ニホンチヨウセンゾクケイザイブンカコウリユウキヨウカ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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