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우(配音演员)양성사업으로 창업을 꿈꾸는 박영매 조선족성공시대 / 흑룡강신문 문걸, 김권철

금번 취재는 사업가가 아닌, 일본기업에서 활약중인 30대초반 훌륭한 회사원을 취재함으로써, 더 많은 분야의 동포인재들을 알리고자 한다.



중국에서의 대학생활과 일본류학 및 회사원 생활



연변1중을 졸업하여 명문대중 하나인 북경사범대학에 입학한 박영매씨는 대학교 재학당시, 본 전업인 법률인턴외에 삼성차이나,북경코트라에서 인턴 및근무를 하였고 2009년3월, 일본류학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2010년 4월,국립 오사카대학 법학연구과 민법전공(석사과정)을 수료하고 일본에서의 첫 직장인을 되었다. 그는 일본No.1 마케팅리서치회사 마크로밀에 취직하였는데 창사이래 경영관리본부에서 근무하게 된 외국인 1호가 되였다.사장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회사로써는 새로운 도전’이라고 말했다고 한다.그는 전공을 살려 법무팀업무를 맡게 되었다.



그러나 2년후 그는 과감히 퇴사를 결심하였다.제한된 범위내에서의 반복된 작업을 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퇴사후 3개월간 좋아하는 여행과 각종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선배님들의 조언을 구하며 공백기를 메웠다. 그는 기획개발 및 해외영업을 직종으로 , 애니메이션,영화,드라마 등 콘텐츠업계 위주로 재취업 혹은 일인기업 설립을 계획하였고 결과적으로 지금 근무하고있는 게임회사에로의 전직을 선택하였다.

스페인사장을 선두로 사원 80%가 유럽계 출신이였던 현 회사는 창사 7년이래 일본과 유럽시장에만 올인을 하였고 아세아시장은 공백이였다.이런 점이 자신한테는 일종의 기회라고 판단해, 면접시 아세아권 시장개발을 도맡아하고 싶다고 제의하였고 로임 협상대신 년간 최소 6차례 아세아권 출장 허락을 받아냈다고 한다.



당사에서 제공하고있는 게임개발,게임퍼블리싱,게임로컬라이징등의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고객을 찾아내고 안건을 받아내는것이 주업무이다. 상해,북경,심천,대만,싱가포르 등 전시회가 많은 아시아 주요 도시에 가서 관련업계의 잠재적 고객을 찾아내 자사의 서비스를 설명하고 또한 자사에서 제공하지 않는 서비스이지만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리서치해 내 자사내에서 서비스구축을 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일본의 기존 게임들을 중국 등 아시아시장에 그 나라의 수요에 맞게 현지화 서비스를 진행하는 것이다.





현지화 작업에는 번역작업을 기초로 하면서 그 나라의 문화,습관과 수요에 맞는 UI(사용자출입관련)시스템 개발,캐릭터 창조,브랜딩,마케팅,유통 등 업체와의 전반적인 작업이 광범위하게 포함되여 있다고 한다.



업무추진방법으로는 회사내에서 번역, 성우 조달,배음 등 각 부서 및 게임업계 관련회사와 협업형식으로 총체적 컨소시엄을 통한 공동작업을 한다고 한다.



힌트가 되고 본보기가 되는 그의 회사생활에서의 지혜와 용기



전직 입사하여 얼마 지나자 않아, 상황을 어느정도 파악한 그는, 부장과 직접 중국출장을 할 수 있게끔 해달라고 일대일 담판을 하였다고 한다. “중국출장도 보내지 않을거면 나를 왜 채용하였나?”라고 부장에게 과감히 직언하고 출장 동행을 제안하였다고 한다.



중국이란 나라와 중국시장에 대해서 자기본인 뿐만 아니라 자기의 업무를 지지해줄 부장의 이해도 필요하다고 판다해 한 특단의 조치로서 일부러 출장동행을 제안하고 처음부터 출장일정을 2주으로 길게 잡았다고 한다.2주이면 일본에서는 다소 긴 출장기간이여서 부장은 처음엔 너무 길다고 반대하였다고 한다.





맨땅에 헤딩하기 식으로, 불모지를 개척해야 하기에 꼭 필요하다고 밀어붙였다고 한다. 그번 출장동행을 직접 경험한 후, 그 부장은 중국시장에서의 고객발굴의 어려움을 절실히 느끼고 그 뒤로는 하고싶은대로 하라며 무조건 밀어준다는 전언이다. 지혜와 용기를 발휘하여 자신을 위해 크나큰 발전 발판과 넓디넓은 발휘공간을 마련하게 된 셈이다.회사생활에 희망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에게 힌트가 되고 본보기가 되는 에피소드이다.



그의 아름다운 인생 버킷리스트들



어릴적부터 유난히 하고싶은게 많아,하루는 수학교사였다가 다른 하루는 작사작곡을 하는 음악가였고,고중시절엔 친구들의 독려에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가 대학시절엔 심리카운셀러나 해외무역업에 종사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 많던 꿈들이 어느새 하나하나 스쳐지나가고 또 그 자리에 새로운 버킷리스트들이 자리잡아 가고 있다고 한다.



현재의 버킷리스트에는 지금 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실력을 키운 후,콘텐츠사업(문화사업)의 일환인 애니메이션/영화산업과 긴밀히 연계되여 있는 성우양성사업을 중국에서 일궈보는것이라고 한다. 일본의 성우양성관련 시스템이 타국에 비해 탄탄하게 구비되어있는데 비해 중국을 비롯한 타국에서는 아직 시스템으로 나와있지 않기에 어느정도의 경쟁력이 있다는 분석에 기반한 계획인것 같다.



또한 중장기적으로는 현재 종사하는 분야에서 자타공인하는 전문가로 거듭나고 성장하여,조선족권익을 대변하는 일들을 하고 싶다고 한다. 특히 한국에서 황해 등 영화를 비롯해 사실과 다른 부정적인 이미지만 부각되고있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대신하여 말해줄 수 있는 콘텐츠가 없는것도 안타까운 일이여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되였다고 한다.



장기적으로는 지금의 응시교육과 획기적으로 다른 인성교육을 하는 학교를 상대로 후진지역들에서 꾸리는것이라고 한다.





일본의 조선족사회에 바라는 점



우선 먼저, 이방인으로서 현재 삶이 진행되고 있는 이 일본사회를 알아가고 료해하여 자신과의 협상점을 찾아내는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자신과 이 사회의 협상점을 찾아내고나면 오로지 자신만의 삶에 집중할 수 있고 자기가 하고 싶은것에 대해 더 잘 알아내기 쉬운것 같다.



조선족동포관련협회 등 단체에 늘 고마움을 느낀다.



친목회, 문예활동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비지니스 등 사업적인 면에서도 실제적으로 도움되여 상부상조할 수 있는 생태계가 형성되면 금상첨화일것이다.



예컨대, 사업가들의 비즈니스적 경험담 교류회,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의 경험담,사회에 발을 내디딘지 얼마안되는 저희같은 새내기들을 위한 직업경험담 ,학생들을 위한 기업인턴 및 견학 등 프로그램들이 있으면 꼭 참가하고 싶다.



다소무역업과 IT업에 편중된 느낌이 든다. 그외 컨설팅/컨텐츠산업과 같은 서비스업을 포함한 더욱 다양한 인재를 모을 수 있는 플랫홈(平台)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세대 간 대화가 더 이루어져서 출세한 기성세대와 미래가 기약되는 젊은 세대의 시너지효과가 더욱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일본의 조선족후배들에게 바라는 점



다국적언어능력은 시야를 넓혀주고 적응능력을 강화해주는 큰 장점이 있다. 다만, 언어능력을 과신하지 말고 우선 기본적인 실력을 다져서 자기만의 전공을 가지는것이 필요하다. 성공이란 개념을 자신에 알맞게 재해석할수 있도록 정신체력을 키우고 무엇이든 쉽게 포기하지 말고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가면서 끝까지 도전해보는것이 중요하다.



중국의 조선족동포들한테서 도움받고 싶은 점



중국에서 성우(声优)양성 관련 사업하는 전문가를 찾고 싶다. 게임업계,애니메이션업계,영화업계에 종사자하는 분이 있다면 네트워킹하고 싶다. 예를 들면,일본 애니메이션 작품의 시나리오를 편집해 중국 현지화서비스를 함께 할 수 있는 관계자와 교류하고 싶다.



부모님께 드리는 감사의 말씀



모든것이 다 고맙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하고싶은 것들을 하고싶은 타이밍에 마음껏 할 수 있게끔 항상 응원해주시고 또한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주셔서 너무 고맙고 당신들의 딸인것이 너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님은 내가 기억이 있어서부터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매일 아침 5시쯤에 기상하여 6시반의 아침밥상을 정성껏 지어주셨다. 그때는 그 한끼의 소중함을 몰랐었는데 자취인생 8년이 되어가는 지금 그 한끼의 열정과 심혈이 얼마나 대단한것인지,그 일상에 녹아든 어머님의 사랑에 더더욱 단단해지고 있다.



아버님은 아침잠이 많은 고중생 딸을 깨워주기 위해, 잠길이 가실 때까지 집안을 몇바퀴 빙빙 돌면서 업어주기를 항상 해주셨다. 그리고 어머님께서 한국으로 돈벌이 가셨던, 소학교 3년동안 혼자서 키워주셨는데,매주 부모님들이 학생 대신 담당하는 청소당번을 단 한번도 빠지지 않고 줄곧 개근을 해주셔서 당시 학년에서도 스타아버님으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가끔은 힘든 순간도 있지만 ,이러한 동년시절의 부모님이 쏟아주셨던 사랑의 기억이 다시금 힘을 얻게 하고 놓치구 싶었던 희망도 다시금 꽉 쥐여잡게 한다.



인물취재에 응한 이유:



아직은 경험이 옅지만 무역업, IT업외에도 특수한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고 또 그런 업종에서도 흥미롭게 일하고 있다는 즐거움들을 많은 동포들과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맺는 말



일본 각 분야에 훌륭한 젊은 조선족동포 인재들이 다분히 많다.



미력이나마 그런 인재들을 한명이라도 조선족 전반사회에 알리고 가능하면 교류를 도모하고자 한다. /흑룡강신문

원문링크: http://www.chinastudio.org.cn/index.php?s=/Home/Article/detail/id/2284.html

Subscribe
Notify of
guest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
0
재미있었나요? 생각을 코멘트로 남겨주세요 ~x